두 주 전 나는 이 칼럼을 통해 한 옛 은인을 찾는다고 알렸다. 그러니까 로스쿨 첫 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에 친구와 캐나다로 여행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운전했던 내 차가 말썽을 부렸고 차 수리 문제로 노바스코셔의 핼리팩스에서 무작정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을 전화번호부에서 찾아 전화했었다. 그 때 미국에서 온 생면부지의 20대 청년들에게 당신이 운영하던 모텔에서 방도 하나 내주고 저녁식사도 사주며 정비소를 소개해 주었던 고마운 태권도 사범이었다.
그게 거의 40년 전 일인데 당시에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꼭 찾고 싶었다. 일단 내가 사는 지역 태권도계에서 고참인 이현곤 사범께 도움을 청했다. 이 사범은 캐나다에 사는 후배에게 알아보아 내가 찾는 은인이 1980년대 중반에 핼리팩스를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후 캐나다의 여러 지역 한인회들과 지인들에게 문의를 해 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칼럼을 통해 공개적으로라도 시도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칼럼이 게재된 당일 오전에 평소 많은 훌륭한 활동을 하는 최응길 사범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 칼럼을 읽고 바로 캐나다의 여러 태권도 사범들에게 수소문 해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은인을 찾아 통화도 했다고 했다. 놀라웠다. 그 분의 이름이 내가 칼럼에 적었던 것과는 약간 달리 ‘김양광’ 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 사범으로부터 받아 적은 전화번호로 일단 텍스트를 보내고 나도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은인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베풀어 준 도움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평소에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기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때 여러가지 사업 운영으로 바빠서 나를 제대로 챙겨 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 은인과의 대화에는 40년 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오래 알던 사람처럼 어색함도 거리낌도 없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에게 그 분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로 보였는데 이번의 대화로 나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나와 12살 차이란다. 그러니까 같은 닭띠인 셈이다. 띠 얘기에 들어가자 ‘닭띠’는 머리도 좋고 열심히 일하지만 일해 모아 놓은 것을 나중에 다 헤쳐 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신도 열심히 일했는데 모은 돈은 별로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꼭 큰 형이 아우에게 하는 듯했다.
계속 같이 얘기를 나누다가 둘 사이에 공통점이 제법 있음을 발견했다. 띠가 같은 것뿐 아니라 같은 해에 이민을 왔다. 그러니까 1974년에 그 분은 캐나다, 나는 미국으로 말이다. 그리고 둘 다 자녀들을 두 명씩 두었다. 그 분은 딸이 둘, 나는 아들이 둘이다. 두 딸 모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단다. 재미있는 것은 공교롭게도 큰 딸과 나의 바로 아래 여동생이 같은 쥐띠에 같은 대학을 졸업했다. 또한 둘째 딸과 나의 둘째 아들 녀석도 대학교 선후배가 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참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 시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으면 멀지 않아 그 분이 거주하는 지역이 나온다고 했다. 지금은 팬데믹으로 인해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이 거의 닫혀 있는 셈이라 어렵지만 여행 제한이 풀리면 미국에 사는 두 딸뿐 아니라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만날 때 둘 사이를 다시 연결시켜 준 최응길 사범도 꼭 같이 보자고 했다. 약 6개월 전에 하던 사업도 모두 정리하고 은퇴해 나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더 있으니 당신이 먼저 운전하고 오겠다고 했다. 학생 시절 철이 덜 들어 제대로 못 드린 인사를 비록 전화 통화로라도 이번에 다시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분과 대화를 하며 새삼 다시 자각한 것은 댓가 없이 베푸는 도움이 주는 선한 영향력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는 받은 도움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받은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 도움을 준 은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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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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