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다시 찾은 할리웃보울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부른 노래 ‘뷰티풀’(Beautiful) 그 자체였다. 사실 LA필하모닉이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협연을 한다길래 과연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궁금해서 할리웃보울을 찾았다. 디즈니 실사영화 ‘뮬란’의 주제가인 ‘투영’(Reflection)으로 다시 인기를 얻었지만 내심 “언제적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야” 싶기도 했다. 게다가 LA카운티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또 창궐해 실내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는 상황이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찾아올까 싶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세계적인 야외음악당 1만8,000석이 꽉 찼다. 목이 터저라 “크리씨” “엑스-티나”(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닉네임)를 외치는 아저씨팬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리웠던 할리웃보울의 함성, 객석을 뒤흔들며 춤추는 젊은이들이 모두 돌아왔다.
이날 공연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이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심포닉 댄스’에 흐르는 스케르초, 맘보, 차차차로 흥겨움의 시동을 걸었다. 이어 멕시코 작곡가 마르퀘즈의 ‘단존 8번’으로 숨고르기를 하던 관객들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등장하자 온몸으로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척 봐도 LA필의 연주에 목말라 할리웃보울을 찾은 걸로 보이는 클래식 애호가들은 객석에서 울리는 굉음에 귀를 막기도 했다. “너무나 기다렸던 공연이죠.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연주하는 바이얼린 곡을 듣고 자란 저에게 오늘 같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연 무대는 일생의 소원이었다”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인사말은 객석을 뜰까말까 하던 무반응의 관객들까지 자리에 눌러 앉혔다. ‘팝의 요정’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녀의 콘서트가 ‘심포닉 댄스’와 같은 감동을 전했다. LA필이 함께 연주한 ‘What a Girl Wants’ 등 7곡의 오케스트라 타셋이 꼭 필요했던 순간마다 힐링이 되는 휴식을 제공했다. 클래식 음악에서 ‘타셋’(Tacet)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가만히 앉아 쉬어가라!”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팝을 연주하던 LA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페미니스트 투사’로 불리는 그녀의 강렬한 사운드와 백댄서들의 요란한 몸짓에 경직되어 있다가도 ‘타셋’의 순간마다 그들 만의 쉼표를 만들어갔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빛을 찾는 우리는 지금 답답함에서 벗어나게 해줄 쉼표가 너무나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 쉼에는 번스타인의 ‘심포닉 댄스’처럼 하모니가 요원하다. 심포니와 댄스라는 진지함과 흥겨움이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지만 심포닉 댄스가 되면 조화롭게 하나가 되지 않나. 조용히 곡을 끝내는 ‘심포닉 댄스’ 연주장에서는 공연계의 상식이 있다. 다른 관객의 여운을 해치지 않도록 연주가 끝나도 지휘자의 사인이 있기까지 먼저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이 날은 상식이 중요하지 않았다. ‘맘보’ 곡 중간 연주자들이 크게 ‘맘보!’를 외쳐 관객들을 들썩이게 하면서 클래식에 빠져들어 가만히 앉아 쉬어가던 관객들은 두다멜 지휘자에게, LA필 단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느라 바빴다. 그리고 앙코르 무대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블랙 드레스를 예술 조각품인양 펼쳐 들고 등장해 ‘뷰티풀’을 부르는 순간 클래식 애호가들 역시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였다. 상처와 후회를 묻은 채 살아간 엄마의 모든 인생을 노래했을 때 16개월 넘게 참아내고 있는 팬데믹의 고통스런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 일은 다 끝났다. 우리는 더 강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노래하는 그녀를 스크린 속이 아닌 눈 앞의 무대에서 보고 듣는 기쁨을 다시 느끼고 나니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객석에서 가만히 앉아 쉼표를 갖는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인들은 세대별 미디어 소비 변화가 뚜렷해졌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가 발간한 ‘디지털 미디어 트렌드’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특히 소비자 행동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다수가 유료 또는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기기 시작했고 엔터테인먼트와 뉴스를 소셜미디어에서 얻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Z세대(1997~2007년생), 밀레니엄 세대(1983~1996년생)는 좀 다르겠지만 X세대(1966~1982년생), 베이비부머(1947~1965년생), 노년층(1946년 및 이전 출생)은 자고나면 바뀌는 새로운 유형의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선택으로 풍요 속 빈곤에 처해있다. ‘공연 아니면 영화’ 양자택일에 익숙한 세대가 세상살이에 지치지 않도록 한시라도 빨리 과학이 바이러스를 이겨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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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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