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경쟁 부문 초청 받은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 주연 연기
16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열린 제74회 칸 국제 영화제의 영화 ‘비상선언’ 포토콜 행사에서 한재림 감독(왼쪽 두 번째)과 주연배우인 임시완(왼쪽부터), 이병헌, 송강호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비상선언’은 올해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로이터=사진제공]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받기는 사막에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이구나, 그만큼 최고의 작품이 된다는 것은 정말 힘들구나, 이게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이에요. '기생충'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것인지 새삼 느껴지더라고요."
제74회 칸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한재림 감독의 신작 '비상선언'의 주연이자 올해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배우 송강호에게 '평가를 받는 사람에서 평가를 하는 사람으로 입장이 뒤바뀐 소감'을 물었더니 이러한 답변이 돌아왔다.
송강호는 "24편의 작품을 보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얼마나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손길이 느껴진다"며 "저도 영화를 찍어봐서 감독, 스태프까지 모두 목숨 걸고 찍는다는 걸 아는데 이 영화는 이렇다, 저렇다 말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기에 그만큼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 그리고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까지 송강호가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때마다 한국영화가 여우주연상, 심사위원상,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그는 칸에서 한국 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송강호의 인기는 현지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비상선언' 공식 상영회가 열린 16일(현지시간) 오후 그가 레드카펫 등에서 카메라 화면에 잡힐 때마다 객석에서는 유달리 큰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가 취하는 작은 몸짓과 손짓에도 관객들은 열렬히 반응했다.
다른 경쟁 작품을 심사하느라 '비상선언'을 세계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는 순간을 함께 하지도 못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송강호를 공식 상영회를 하루 앞둔 15일 프랑스 남부 휴양지 칸의 한 호텔에서 짧게나마 만났다.
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두고 지난 5일 칸에 등장했을 때와 비교하면 얼굴에 피로함이 묻어났지만 연합뉴스와 30분간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그는 그런 기색을 한순간도 내비치지 않았다.
'기생충'이 칸 영화제를 뜨겁게 달궜던 게 벌써 2년 2개월 전이다. 하지만 '팔레 데 페스티발'은 여전히 기생충을 곳곳에서 기억하고 있었다. 개막식에 봉준호 감독을 '깜짝' 초청한 게 대표적이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개막식이 끝나자마자 와서 '봉 감독 오는 거 몰랐지? 몰랐지?' 하면서 즐거워하더라며 개막식 무대 위에 심사위원이 서는 자리를 정할 때 일부러 봉 감독 옆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 걸 보면서 칸이 얼마나 '기생충'을 존중하고 있는지 체감했다고.
송강호가 개막식 무대에서는 봉준호 감독과 재회했다면, 폐막식 무대에서는 '비상선언'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병헌과 함께하는 순간이 있다. 이병헌은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시상자로 선정됐다.
"한국 영화의 위상,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 한국 영화인들에 대한 존중이 함축돼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사실 이번 인터뷰에는 제약이 많았다.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경쟁작에 대한 견해를 물을 수 없었고,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그가 주연한 '비상선언'도 초반부까지만 기사로 다뤄달라는 당부를 여러 차례 받았다.
영화는 한 번 이륙하면 무슨 난리 통이 벌어져도 결코 도망칠 수 없는 비행기 안에서 발생한, 전례 없는 위기를 마주한 온갖 군상을 그린다. 송강호는 지상에서 그 사건의 전말을 뒤쫓으며 해결책을 마련하려 악전고투하는 베테랑 형사를 연기했다.
송강호는 "비상선언은 재난영화의 외피를 띠고 있지만, 사실은 재난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재난에 대처하고,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게 핵심"이라며 "위기 속에서 나 자신과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을 아주 날카롭게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극 중에 맡은 인물이 자기 노력대로 안 되는 것, 즉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해 '멘붕'이 일어나는 모습들이 이 영화의 백미"라며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에 빠졌을 때만큼 슬플 때가 없는데 그런 지점들이 잘 묘사가 됐다"고 답했다.
송강호가 살이 많이 빠진 것으로 보이는 장면을 언급하며 체중을 얼마나 감량한 것이냐 물었더니 주변에 한재림 감독이 있는지 이리저리 살펴봤다.
"한 감독과 일하면 살이 빠지게 돼 있어. (웃음) 그만큼 집요하게 찍으니까. 좋은 작품을 위해서 배우를 건강한 방향으로 못살게 해요. 할 때는 고생될지 몰라도 결과물이 좋잖아요."
한재림 감독과는 2007년 '우아한 세계', 2013년 '관상'에 이어 이번 영화로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한 감독에 대해서는 "외람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로서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진다는 느낌이 정말 많이 들었다"며 "기술적으로도 훨씬 더 성숙하고,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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