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치러진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배를 만나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법대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는 환경에서 풀타임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에 매진해 40대 중반에 변호사의 꿈을 이룬 그가 그동안 쏟아온 노력은 ‘주경야독’의 전범이라 할만하다.
후배는 자신이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실력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한다며 겸손해했다. 무엇보다 법대를 졸업하지 않으면 아예 변호사 시험을 치를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일부 주들과 달리 있는 캘리포니아는 이런 자격조건을 내걸지 않고 있어 자신이 도전을 마음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 합격선을 조금 낮추도록 한 지난해 8월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을 언급했다. 이 결정에 따라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 합격선은 기존의 1440점에서 1390점으로 약간 낮아졌다.(그럼에도 캘리포니아의 합격선은 여전히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법원 판결은 팬데믹 상황 속에서 한층 더 불리한 처지에 놓인 응시생들을 배려한 것이었다. 그 결과 2월 시험 합격률은 37.2%로 2020년의 26.8%보다 높아졌다.
후배는 합격자들의 개별점수는 공개하지 않는 원칙 때문에 자신이 이번 조치의 혜택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법원의 결정을 보면서 공정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대 진학에서부터 수강료가 수천 달러에 이르는 단기속성반에 이르기까지 변호사가 되는 일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응시생들이 좀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합격선을 낮춰준 법원의 조치는 많이 기울어져있는 경쟁의 운동장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자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나름 풀이했다.
만약 얼마 전 돌풍을 일으키며 ‘국민의 힘’ 당대표로 선출된 이준석에게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결정과 관련한 논평을 요구한다면 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조치는 그가 주장하는 공정의 개념에 너무나도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준석이 앞세우는 ‘공정한 경쟁’ 프레임에는 애초부터 기회의 균등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험으로 대표되는 경쟁적인 제도와 그 결과만이 공정의 기준과 잣대가 된다.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온정과 배려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한 어떤 노력도 그는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괜한 트집이 아니다. 그 자신은 부인하지만 철저히 ‘엘리트주의’에 매몰돼 있는 그의 사고방식은 그동안 그가 펴낸 책과 발언들을 통해 수도 없이 확인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엘리트가 세상을 바꾼다는 기본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할당을 공정의 개념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켜온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론’의 열렬한 신봉자로 보인다. 이런 인식은 “미국은 정글의 법칙과 약육강식의 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발언에서 드러난다. 미국에서 몇 년 유학을 했다는 그가 과연 미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러니 이준석이 학문적으로 정의와 공정 담론을 꾸준히 제기해오고 있는 자신의 모교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준석은 샌델 교수를 “약장수”라 지칭하면서 자신은 하버드 재학 당시 샌델 교수 강의를 듣지 않았으며 많은 다른 학생들 역시 그랬다고 폄훼를 서슴지 않는다.
이준석은 겉으로는 그럴듯한 언행으로 파격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속은 뼛속까지 보수의 낡은 가치로 가득 차 있다. 이준석이야말로 공정의 본질을 훼손하고 왜곡하면서 젊은이들의 분노를 자극해 지지를 얻는 ‘공정의 약장수’처럼 보인다.
이준석의 공정이 지배적인 규범이 되고 그것이 구체적인 정책의 형태를 띨수록 그에게 열광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절대 다수는 아무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점차 경쟁에서 뒤처지며 도태될 것이다. 기치로서의 언어와 실체로서의 언어를 분별하지 못할 때 대중은 ‘정치적 약장수’들의 농간에 쉽게 놀아나게 된다. 이준석이 외치는 공정의 실체는 서서히 본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볼 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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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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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게를 늘리고 모든 사안에 척척박사 인척 하지말고 한번 더 생각하는 신중함을 길러 어쨋든 젊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많이 나올수 있도록 귀감이 되길...큰 기대는 안되지만...
젊어서 좀 나을줄 알았더니, 하도 보수에 인물이 없어 이 젊은 사람이 당 대표가 됨을 많은 사람들이 응원 했는데 그물에 그밥이다. 말을 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