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오피니언에 의하면 근래에 Ph.D. 박사학위의 60%가 무직이거나 아니면 저소득층의 직업에 일하고 있다고한다.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실린 글에도 Ph.D.의 20% 미만이 본인들이 원하는 아카데믹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전공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Ph.D.의 과잉 배출은 학위 과정에 대한 의문을 초래한다. 현재 내 주위에서도 많은 Ph.D. 실직자들을 본다.
내 자신이 Ph.D. 공부에 전념하던 시절을 되돌아 보건대, 톨스토이의 말처럼 노력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나는 목적이 설정되면 다른 곳을 안보고 집중하는 성격이다. 소중한 인생은 매 순간 속에 있듯이 순간을 이기면 영원을 이긴다고 했다. 그 못말리는 열정 덕분에 모교 대학에서 역사에 남을 최단기내에 박사학위를 마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던 미국인 친구를 저 세상으로 보내며 Ph.D. 라는 타이틀에 대하여 좀 생각을 해봤다. 그는 상담 심리학 Ph.D.를 획득한 후, 교수와 상담 치료사로 일을 했는데 그 누구보다, 박사라는 타이틀 소유에 굉장한 자부심과 집착을 갖고 살았다.
오죽하면 장례식의 영정 사진을 하얀 색, 의사 가운에 Ph.D.가 달린 이름패 사진을 사용하도록 유언을 했을까. DC에 있는 국립 식물원 입구에 그가 이루어 낸 기적의 집이 있다. 그는 혼자서 아무 것도 없는 폐허의 땅위에 삽을 들고 기초 공사부터 시작, 혼신을 다 쏟아 손수 벽돌 하나 하나를 쌓아 티끌모아 태산의 기적을 이루었다.
중간에 돈이 없으면 쉬어 가며, 추운 겨울에는 공사 현장에서 천막을 치고 온방 없이 견디어내고, 봄이 오면 다시 쌓고, 때로는 무일푼 절망의 시간도 견디어 냈다. 어느 날, 내가 들러서 얼마간의 돈을 쥐어 주었더니 그동안 굶었던 개를 위한 양식부터 사러 나섰다. 그는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 거인이었다. 8년이 되던 어느날 드디어 기적의 멋있고 웅장한 집을 완성해 냈다.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집 어디에나 그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정들어 지은 그 집을 두고 어떻게 떠났단 말인가. 세 차례나 심장마비, 뇌출혈로 마지막 두어달을 버티다가 70 초반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 집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를 그리며 하늘나라에서도 Ph.D. 라고 호칭할까 생각해봤다.
내 주위에 또 다른, Ph.D.가 있다. 그는 일본인 미국 시민권자로 이곳 메릴랜드 대학에서 political science 분야의 Ph.D.를 취득했다. 그를 알게 된 동기는 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활동할 당시에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과 사과 문제에 반기를 들고 정의를 위한 동지로 일하게 된 연유였다. 타우슨 대학, 텍사스 대학 등에서 교수로 가르칠 때마다 기회를 만들어 나를 초청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는 가르치는 대학마다 오래 있지 못하고 밀려 나오곤 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본인이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교수직에서 차별대우를 받아 늘 해고 당한다며 아시안 교수끼리 인권단체협회를 조직하자며 몹시 분노했다.
그리고는 몇 년동안 연락이 두절됐는데, 어느날 DC, Capitol Hill의 스타벅스 카페에서 우연하게 부딪쳤다. 그의 남루한 옷차림은 홈리스처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무직, 그러나 의회 도서실에서 책을 저술하기 위해 연구 작업을 하러 매일 다닌다고 하며 나름대로 만족해 보였다.
그는 20대 젊은 시절부터 자유롭게 독신 생활을 해왔는데 이제 나이가 70이 되어, 장만한 집도 없고 몇 푼 안되는 소셜 시큐리티와 푸드 스탬프에만 의지해서 산다. 일본에 여자 형제가 있다는데 그동안 살아온 문화의 차이로 서로가 대화가 안된다며 일본에 돌아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는 영어권 책도, 여러 권 저술하면서 Ph.D. 나름대로의 강한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근래에 College Park에서 방 한 칸을 렌트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는 그에게 물품을 전달하러 만난 적이 있었다. 그의 삶의 모습은 초라한 인생의 황혼기, 한 쪽 얼굴에 마비가 와서 얼굴은 일그러지고 대화, 인지력도 어눌해지고 있었다. 매일 외치던 “나는 Ph.D.” 가 노년에는 속수무책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지며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하여 질 때’라 했다. 내 삶의 선한 경주를 잘 마치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타이틀로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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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자 / 한미국가 조찬기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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