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하 노피곰 도다샤 /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전져재 녀러신고요 / 어긔야 즌대랄 드대욜세라 /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대 졈그랄셰라 /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행상을 떠난 사랑하는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산 위 망부석에 올라 남편의 무사 귀환을 달님에게 간절히 기원한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기록된 백제의 대표적인 서정 가요 정읍사이다. 백제음악은 당시 고구려나 신라의 음악과는 구별되게 서정적이면서도 백제인들의 현실을 잘 반영한다. 백제가요 정읍사는 이후 오랜 기간 전라북도 일대를 중심으로 민간인들 사이에서 불리다 조선 성종 시대에 이르러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문서화된다. 현재 남아있는 한글로 표기된 노래 중 가장 오래된 노래로 15세기 말 편찬된 악학궤범에는 고려의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인 무고(舞鼓) 음악이 정읍사라는 명칭으로 전해진다. 삼국시대 이후 조선 시대까지 궁중에서 사용하던 궁중음악을 향악이라고 하는데 향악의 반주곡에 맞추어 춤추는 전통 궁중무용을 향악정재라고 한다. 정읍사는 조선 중기 이후 가사는 부르지 않게 되고 그 반주가 관악 합주곡으로 전승되는데 현재는 그 아명인 수제천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전해지는 향악 중 가장 오래된 곡이다.
무대 오른편의 집박(執拍)이 박달나무 여섯 조각으로 만들어진 부채모양처럼 생긴 박(拍)을 활짝 폈다가 마치 허공을 가르는 듯 “딱” 소리가 나게 한번 접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수제천이 시작된다. 숨이 멎을 듯 느리고 장중한 관악기의 선율이 순식간에 온 세상을 압도한다. 악기편성은 삼현육각(三絃六角)인 향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좌고(북) 1이 기본편성 악기인데 지금은 아쟁과 소금이 보태진다. 많지 않은 악기로 마치 진천동지(震天動地)하듯 위엄을 뽐낸다. 26센티미터가량의 작은 몸집에 불과한 향피리가 공간을 압도하는 당당함으로 주선율을 연주하는데 피리가 쉬는 여백을 대금과 해금이 이어서 연주하는 연음형식을 반복한다. 음악은 피리와 장구, 북의 소리와 함께 웅장하고 역동적이었다가 대금과 해금의 이중주가 시작되면 소리의 힘찬 여운을 숨 고르듯 섬세함을 더한다. 소금은 화려한 기교를 마음껏 뽐내고, 시종일관 개나리 활대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아쟁은 마치 남성이 묵직한 저음으로 천상의 노래를 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서양음악에서 지휘자는 작품을 해석하고 연출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악단 연주자들의 템포와 리듬을 조절한다. 따라서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에 따라 음악의 색깔이 달라진다. 수제천에서 보는 집박의 역할처럼 흥미롭게도 한국음악은 장대한 규모의 궁중음악에도 서양 오케스트라와 같은 지휘자는 없다. 집박은 우두머리 악사의 역할로서 음악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데 음악의 시작과 끝에 박을 친다. 음악의 시작에 박을 한번, 음악의 끝은 박을 세 번 쳐서 음악의 처음과 마지막을 알린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연주 내내 지휘봉을 흔들며 생동감이 넘치게 지휘하는 것과는 대비되게 집박은 무대의 오른편을 벗어나지 않는다. 연주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연주자들의 호흡에 음악을 오롯이 맡기는 것이다. 수제천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호흡의 범위를 넘어선다. 메트로놈으로조차 측정하기 힘든 느린 속도와 불규칙한 한 박의 길이는 마치 박자가 없는 듯 늘어질 대로 늘어진다. 그러면서도 장구와 북의 장단으로 연주의 흐름을 조절하며 악기들이 주거니 받거니 가락을 끊어지지 않도록 잇는다. 긴 호흡을 넘어서는 불규칙한 박자를 연주하는 데 상대와 호흡하며 참으로 웅장하고도 조화롭게 전 4장을 흩어짐 없이 한 공간으로 음을 모은다.
7세기 중엽부터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민간에서 사랑받던 백제가요 정읍사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 국가의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궁중의 연례악으로 쓰였다. 당시 궁중에서는 악곡이 연주되는 의례의 성격에 맞추어 그때마다 다른 아명을 사용하였는데 순조 1828년, 정읍사는 수제천이라는 이름으로 의례에 사용되면서 1933년에 이르러 수제천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굳어진다. 수제천의 뜻이 듣는이에게 하늘처럼 영원한 생명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것임을 참작할 때 민간가요로 널리 알려진 정읍사라는 곡명보다는 나라와 민족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로 조선 궁중의 품격과 우아한 기품을 반영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현대에도 수제천은 변함없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한다. 조선 시대 왕의 연례와 외교사절단 맞이에 빠질 수 없었던 수제천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대에도 국가의 중요 행사에 뜻깊은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한국적인 독창적인 색채로 많은 작곡가의 음악적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일례로 동, 서양 음악의 중개자로 현대음악사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은 수제천이 자신의 음악적 뿌리였노라 발언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적 독창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중심에도 한국 전통음악 수제천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간절한 기원에서 시작하여 국가의 안녕과 민족의 번영을 기원하는 궁중 연례음악으로, 그리고 지금은 어떤 음악과도 유사하지 않은 아름답고 독창성을 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된 수제천, 정읍사의 가사를 떠올리며 국립국악원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 @국립국악원 수제천 연주; https://youtu.be/NZIuRAL1lho
수제천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처럼 영원한 생명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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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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