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했으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하고/ 새로운 존재방식을 배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더 깊이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이는 명상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춤을 추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치유되었다/ 무지하고 위험하고 생각 없고 가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지구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위험이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잃은 것을 애도하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새로운 모습을 꿈꾸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치유받은 것처럼/ 지구를 완전히 치유해 나갔다.
작년 3월,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봉쇄되었을 때 위스콘신 주의 은퇴교사 키티 오메라(Kitty O‘Meara)가 쓴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번역 류시화)의 전문이다. 불안에 빠진 친구들을 위로하려고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써내려갔다는 이 시는 페이스북에 올리자마자 열광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사흘 만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메라는 오프라 매거진에 의해 ‘팬데믹 계관시인’ 칭호를 얻었고, 시집은 그림책으로 출판되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크게 유명세를 탔다.
시를 읽으면서 그때의 당혹감이 생각났다. 하루아침에 직장과 비즈니스, 학교와 공연장들이 셧다운 되었을 때 얼마나 이상하고 불안했던가. 모든 게 올 스톱되었고 다 같이 패닉에 빠졌던 전대미문의 재난이었다.
그로부터 1년3개월이 지난 오늘, 캘리포니아 주는 공식적으로 정상화가 선포되었다. 이제 백신접종을 끝낸 사람은 마스크 없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밀린 쇼핑에 나설 수도 있고, 짐에 가서 운동도 할수 있으며,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이다. 무엇부터 해볼까?
뉴욕타임스가 올해 초 독자 800여명에게 팬데믹이 끝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은 내용이 “허그, 키스, 악수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싶다, 직장동료들과 모여 잡담하고 싶다, 음식을 잔뜩 투고해서 파티를 열고 싶다, 춤추러 나가겠다, 아이들 떼놓고 아내(남편)와 데이트하고 싶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잔뜩 빌려오겠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예고편부터 시청하고 싶다, 아이들을 맥도널드, 처키 치즈, 칙필레에 데려가서 맘껏 놀게 하겠다… 등등의 사연이 이어졌다.
이렇게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에 족쇄가 채워졌던 1년이었다. 2020년 3월 이후의 삶을 ‘잃어버린 1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은 기간이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거쳐 우리는 성숙해간다. 집단적으로 재난을 통과하는 동안 휴식과 회복,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정신없이 굴러가던 바퀴를 억지로 멈춰 세우자 삶에서, 일상에서, 관계에서, 업무에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 시간이기도 했다. 갇힌 공간에서 쳇바퀴 도는 생활이 계속되자 내가 어떤 인간인지가 가감 없이 드러난 것이다. 매일 늘어가는 코비드-19 환자와 사망자에 대해 들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깊어진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과의 사적 공적인 관계가 재정립되었고, 그동안 습관적으로 해온 일들 중에 많은 것이 필요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샤워를 매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화장과 염색을 자주 하지 않으면 피부와 머릿결이 좋아진다는 당연한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다. 호화리셉션과 허니문 없는 작은 결혼식 덕분에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런 한편, 크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우리 사회가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뉠 거라는 ‘포스트 팬데믹’ 담론이 넘쳐났지만 사실 지금 와서 보니 크게 달라질 것도 많지 않아 보인다. 거리는 다시 차로 넘치고, 식당들은 손님들로 가득 차고, 공항은 여행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립스틱 판매가 늘어나고, 미뤘던 결혼식과 졸업식도 줄을 잇는다. 과거의 일상이 그대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이 분명히 있다.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고, 휴식을 취했고, 새로운 존재방식을 배웠고, 자신의 그림자와 만났고,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구를 완전히 치유해 나가지는 못했다. 팬데믹 계관시인이 팬데믹 이후의 인류에게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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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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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못 느꼈던 마음, 생각이 정리가 되네요. 잔잔한 물결이 마음속에서 느껴집니다. 이제 그동안 허둥대며 살던 삶이 조금씩 안정되기를 바랍니다. 처음겪은 풍랑속을 지나며 힘들고 어려웠고 막막함, 전혀 예측못할 미래속을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