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됐어야 하는데 기자를 하고 있으니...” 수삼 년 전에 새크라멘토 영화사 동진 스님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스트레스에 절절 매고 생활고에 헉헉 대는 기자의 딱한 꼴을 ‘듣는 기분 섭섭하지 않게 근사하게’ 에둘러 지적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닌 게 아니라 기자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나는 것 등 그야말로 오온에 푹 찌든 이 세상에 촉을 세우고 사는 게 업이고, 시인은 소리 나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냄새나지 않는 냄새를 맡는 등 그야말로 오온에 물들지 않은 저 세상에 촉을 세우고 사는 게 업인 것 같다, 마치 불교 수행자처럼.
“야 니들은 죽지 못해 살지? 나는 살지 못해 죽는다 야!” 왕년의 인기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이 죽음을 재촉하는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 문병 온 동료후배 희극인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저런 유머를 발산하는 그의 유쾌한 천재성에 혀를 내두르는 한편으로 삶이란 죽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기자가 고등학생 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중국시인 지센(紀弦)의 배(船) 마지막 연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나의 적재 단위는/인생이란 중량’(船載着貨物拜旅客선재착화물배여객 我的順位是人生的重量)처럼 인생이란 그런 것일까. ‘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 선생이 몸소 쓴 어떤 글에 붙인 굵고 짧은 이름, 그러나 그 여운은 (적어도 내게는) 굵고 길게 남는 그 이름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이런 것일까.
삶과 죽음 같은 원초적 근본적 질문에 대한 내면의 답을 더듬기도 벅찬데 코로나다 불경기다 외부의 해코지까지 심한 요즘, 일해도 일하는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만한 마음공부 새책이 나왔다. 도서출판 자음과모음이 지난달 펴낸 번역서 <부처님 회사 오신 날>이다. 원 제목은
다.
‘사무실에서 따라 하면 성과가 오르는 부처의 말씀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는 댄 지그몬드(또는 시그문트, Dan Zigmond), 주로 북가주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겸 선승이다. 1998년 일본계 젠부디즘(선불교) 선사로 계를 받은 그는 상당수 북가주 한인불자들도 알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젠센터와 지코지젠센터에서 수행하면서 다양한 다르마(부처님법)을 섭렵했다고 한다. 불교전문매체 트라이시클(Tricycle)의 객원편집위원이기도 한 그는 예전에 화제를 모은 ‘붓다의 다이엇(Buddha’s Diet, 한국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식단’으로 번역)’의 공저자다. 과학자 내지 IT전문가로서의 지그몬드는 과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관련 팀을 이끌었고, 지금은 찬 주커버그 이니셔티브(the Chan Zuckerberg Initiative)의 데이터 사이언스 디렉터로 있다. 미국의 비즈니스전문매체 ‘와이어드(Wired)’에 의해 ‘당신이 알아야 할 비즈니스 천재들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따르면, <부처님 회사 오신 날>은 “부처의 삶과 깨달음을 통해 우리에게 삶과 일을 대하는 방법과 마음가짐을 제시하고, 부처의 지혜는 종교적이기보다 실용적으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마음가짐과 문제 해결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종교와 상관없이 불교를 처음 접하는 독자도 재미있게 읽으면서 부처의 깨달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부터 독특하다. △서문 : 부처는 일하지 않았다 ◇1장 부처가 회사에 온다면? (통찰력):
일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삶은 스트레스투성이/불교는 스타트업이었다?/고통을 선택하라
◇2장 부처가 있는 사무실을 엿보다 (수행법): 주의를 기울이면/시작은 호흡부터/초심자의 마음으로 대하라/일하지 않아야 일이 된다/버스를 탄 부처/깨기 위해 잠들어라/진실도 상황에 맞게/깨달은 자들의 논쟁/야망을 품고 싶다면?/요다는 틀렸다/진짜 문제와 가짜 문제 ◇3장 부처를 유혹하는 것들에 대하여 (방해물): 애착과 거리 두기/부처보다 균형 있게 살 수 있다/일은 내가 아니잖아요/나는 왜 산만해졌을까?/점심밥을 구걸한 부처/부처는 어떤 사람을 해고할까?/떠나야 할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4장 부처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완성): 부처는 데이터를 따르라고 했다/지금 여기에 잠시 머무를 시간/타인을 구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혹시 지금 막 불교신자가 되신 건가요? △감사의 말
<부처님 회사에 오신 날>은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당신을 불교신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내 목표는 그보다 훨씬 소소한 동시에 원대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덜 고통받는 데에 부처의 가르침 중 일부를 참고하도록 돕는 것이다. 주로 직장생활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당신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잠시 행복한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닌 참되고 깊은 행복을 누리길 기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깨어났다’라고 표현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같은 의미다. 부처 역시 당신이 불교신자가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부처는 단지 당신이 부처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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