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화사한 날, 자주 가는 카페 화단 주위를 개미 무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다량의 카페인 때문에 시야가 들끓은 탓인지 개미들은 서로 격렬히 물어뜯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서 왔는지 개체 수가 유달리 많아 거의 스펙터클해 보였다. 도시 환경과 힘들게 타협하는 생태학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하다못해 도로 중앙 분리대조차 갈라파고스나 먼 미지의 열도로 보일 것이다. 미국 네바다주 51구역이 감춘 미확인 비행물체(UFO)의 비밀이며, 피라미드의 진짜 용도 같은‘소년중앙’식 탐구도 싫증날 무렵, 나는 지질학자들이 인류세라고 명명하는 세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동물의 우주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동물을 관찰하는 것은 부가적인 매력이 있었다. 다른 종류의 관광이자 내가 있는 곳을 경험하는 방법이었다. 어떤 물고기는 남자로 태어났다가 여자가 되기도 해서 너무 재미있었다. 벌레는 다 자라도 늙지 않는다는 게 아주 신기했다. 포유류는, 분류학적 가능성이 그렇게 다양한데도 기본적으로 흥미가 덜했다. 짝짓기 과정부터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세렝게티 초원의 아카시아 나무라도 된 듯 지구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골프공에 맞았다가 회복 중인 꼬마 대머리 독수리, 폭탄 탐지가로 훈련된 벌, 백악질 바닥에서 졸린 듯 움직이는 가오리, 위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둘기, 성교가 끝나면 상대를 먹어 치우는 거미, 잎 소유권을 주장하는 자작나무 애벌레를 본 뒤에는, 과학자들이 이중 트랩에 잡힌 외알 안경 코브라의 갈비뼈가 어떻게 덮개 뼈로 변하는지 밝히는 수술을 하고 있는데 코브라가 마취에서 깨는 바람에 혼비백산하는 얼굴까지 깔깔거리며 보았다. 뿔 개구리가 괴로워하며 소리 지를 때는 웃음기가 싹 가셨지만.
나는 벌레보다 스캔들이 많은 해양 생물계도 살폈다. 타이타닉이 가라앉은 그 자리, 열수공 지역에는 화학 합성 라이프 사이클의 증거인 산을 먹는 박테리아부터 남근석을 닮은 대왕석회관갯지렁이며 또 다른 쌍각류가 살고 있었다. 이 생물들은 필시 다른 행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었다. 바다 밑 봉우리의 용암층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는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그 옛날 운석에 맞아 파인 표면으로부터 보호된 화학적 에덴동산을 방불케 했다. 지구의 시작이 꼭 그랬을 것이다.
작은 야생 공원에서 적은 수의 동물들이 제한된 조건에서 사는 다큐도 있었다. 겨울 햇빛을 받으며 바위에 누운 호랑이를 보면, 호랑이를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웅장한 미적 가치를 구하는 방법 같았다. 호랑이는 살아 있는 자연주의자. 사람들이 예술 작품에서 바라는 힘과 아름다움, 모든 것이 있었다. 심지어 스스로 움직였다.
케이지를 통과하는 기린의 행렬은 특히 흥미로웠다. 한 무리의 기린이 턱으로 나뭇가지를 치고 있었다. 몇 분 뒤, 기린들의 인내심은 그 우아한 목을 기울여 유연한 혀로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벗길 때 들리는 소리로 보상받았다. 기린이 잎을 먹는 광경은 인간중심적 관점으로 보면 지구에 있는 천국과 가장 가까워 보였다. 인공 초원에서 추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다리가 긴 모델처럼 유유히 걸어다니는 기린들은 매일 동물원 문이 닫히기 두 시간 전에 돌아왔다. 그들은 고개를 숙여 4m 높이의 입구를 지나 천장이 9m나 되는 방으로 한 마리씩 들어갔다. 그런데 기린은 초탈해보이는 몸놀림과 달리 자극에 아주 취약했다. 다른 울타리에 있는 얼룩말이 기린 우리 안으로 공을 찼을 때, 기린은 집에 들어가 일주일 내내 꼼짝하지 않았다. 세심하게 보호받지 못한 어떤 기린은 과잉 행동 증후군에 빠져 신경과민의 혀로 벽을 핥기도 했다.
사람들은 동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세상의 모든 상품에 동물 얼굴을 넣었다. 말은 구두약에, 거위는 와인에, 곰은 밀가루에, 독수리는 청바지에, 눈이 휘둥그레진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마다가스카르 슬러시 음료에. 그리고 인간은 울타리를 만들어 동물을 가뒀다.
어떤 다큐에 정치가가 등장했다. 오전 11시. 그 도시의 시장이 도시 관할구역에 개장한 동물원을 방문했다. 그사이, 긴팔원숭이가 우리 밖으로 나와 소리를 지르고 오줌을 쌌다. 얼굴은 잔뜩 고뇌에 차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과 검은 눈 아래 다크 서클. 화면인데도 어쩐지 그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쳐다 보지 마요.”
동물원 관장이 시장의 젊은 측근에게 주의를 주자 긴팔원숭이가 나무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시장이 약속 시간에 늦게 와서도 거만하게 순시하는 것에 짜증을 내는 건지 다시 점프를 해선 시장 머리 뒤에서 가지를 흔들었다.
어떤 기자가 시장에게 물었다.
“시장님은 동물원에 와서 무엇을 느꼈나요?”
“아름다움과 재미요.”
“어떤 아름다움인가요? 얼마나 자연이 아름다운가, 그거요?”
“믿음이라고 해두죠.”
“신이 모든 걸 창조했다고 사람들이 우기는 믿음요?”
그 기자는 시장을 조롱하고 있었다.
“동물을 길러본 적은 있나요?” 시장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항상 열대어가 있었어요.”
원숭이들은 시장 얘기가 답답한지 머리를 철창에 박고 있었다.
다시 장면이 바뀌고, 사육사는 메아리치는 폭포와 원숭이 똥 냄새 속에서 고개를 저으며 설명하고 있었다. “악어의 뇌는 작은 동전만 해요. 악어한테는 이유가 없어요. 상황을 제압하는 것만 중요하니까요.”
동물원은 모든 시대에 걸쳐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 자료를 빽빽하게 채운 곳이었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활발한 관심을 전시하는 동시에 지배 감정을 없애는 곳.
만화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인간 사이를 잇는 의인화된 환상을 이용한다. 동물원 역시 동물이 가진 존재의 조건, 또 하나의 자연을 약속한다. 눈앞에 처음 보는 생태계의 속임수가 아니라 야생 원시시대 풍경이 펼쳐져 있다면 지구가 생각보다 덜 오염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연이란 사람이 만든 어떤 상태라는 생각은 우리를 조금 안심시킬 것이다. (그런 점으로 본다면 놀이공원은 동물원의 네 번째 단계 같다.) 야생 개체의 과학적 관리 및 이론 적용에 따른 종의 보존은 정글과 비슷하게 꾸민 닫힌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전에는 몰랐던 강박을 주었다. 인간이 동물을 가두는 데는 ‘행위 또는 부합’의 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새들조차 수감자가 된다. 야생에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집 비둘기들은 삶을 위해 갇힐 수밖에 없다. 집 비둘기에게 최상의 환경이란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새장에 갇히는 것. 최악의 조건은 날 수 없는 공간에 포박되는 것이다.
어느 가을 날, 당신이 변산반도에서 시베리아로 날아가는 작은 새라면 새벽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것이다. 종일 날아서 잔뜩 지친 당신은 먹고 쉴 데를 찾을 것이다. 강가의 숲은 아주 마음에 들 것이다. 아스팔트, 철강, 유리가 아니라. 그런데 볼가강 옆에 있는 단풍나무에 잠깐 앉자마자 외계인이 인간을 납치할 때와 똑같이 누군가 당신을 낚아챌 것이다. 몸무게를 재고, 알 수 없는 측정 도구로 온 몸을 찌르고, 아마도 슈퍼 마그넷으로 신체를 정밀 검사한 뒤, 발목에 작은 발찌를 채우곤 나머지 일생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조류학자들은 새에게 이것보다 더한 불행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평생을 울타리 안에 살도록 강요된 동물들에게 닿지 않았던 그동안의 개인적 감정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인간과 동물을 결합하는 이주 본능의 개념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자연은 공원이나 동물원처럼 경계지어진 갇힘의 연속인 걸까. 그것이 현대 동물원의 문학적 기능일까.
나미비아에서 사는 코끼리를 보며 종(種)을 초월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케이지 안에서 벌거벗은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인간은 칸칸이 구획된 방에 따로 따로 갇히려고 평생을 바치니까. 그리고 동물원은 인간도 동물처럼 울타리 쳐진 세상에 산다는 은유라고 무력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다윈이 될 수 없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창이 넓은 카페 앞을 지날 때마다 혼란스럽다. 카페에 앉아 밖을 보는 사람들과 걸어가며 안을 흘낏대는 나는 서로 무엇일까. 내가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을 보는 걸까, 그들이 우리 밖을 나돌아다니는 동물을 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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