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비 속에 봄이 가고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그 봄날은 가고 봄의 끝자락이며 여름으로 진입하는 계절을 알리는 밤꽃(栗花: Chestnut Blossom)의 달(月) 6월이 되었다.
70년대 인기 여가수였던 윤승희는 ‘제비처럼’에서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라고 노래했다. 예전에는 봄에 제일 먼저 생각나고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새가 바로 제비였다. 강남 갔다가 돌아온 제비가 알려준 것은 봄이고, 봄은 역시 꽃이고, 꽃의 계절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봄날이 제대로 음미할 겨를도 주지 않고 서둘러 꽁지를 빼고 있다. 목련, 개나리, 벚꽃, 진달래는 간데없고 아카시아만 힘겹게 향을 뿜으며 봄을 지키려 한다. 그래도 젊은 과부 몸서리치게 한다는 밤꽃이 피어 있으니 봄날의 끝자락은 아직도 남아 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방방곡곡 밤꽃이 희노랗게 만개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밤꽃은 한 그루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데 이중 수꽃에서 짙은 향기가 난다. 우리가 보는 화려한 밤꽃은 대부분 수꽃이다. 길짐승이나 날짐승처럼 수꽃이 더 화려하다.
어느 계절이나 피는 꽃들은 여성에 비유하고 상징한다. 특히 아름다운 꽃을 보면 여성을 연상한다. 그러나 단지 밤꽃만은 향기가 남성 냄새로 인해 남성에 비유한다. 밤꽃은 남성을 상징하는 유일한 꽃이다.
밤꽃은 밤꽃끼리의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화학적 신호인 패레몬(pheromone)’이란 향이 있고, 그 향의 성분 중 스퍼미딘(spermidine)과 스퍼민(spermine)이 들어있다. 이것이 정액이 내는 독특한 냄새인 스퍼미딘(spermidine)이라는 단백질 냄새와 똑같은 성분의 냄새다. 그래서 밤꽃에서는 남성 냄새가 난다고 한다. 약간 비릿한 내음이 바람에 날려 마치 여인네들을 유혹하는 것 같다.
어느 방송에서 밤꽃 냄새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 남성들은 밤꽃 냄새를 상쾌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이상하다고 답했고, 여성들은 ‘향긋한 냄새’로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다. 성적 뉘앙스를 풍기는 꽃이다.
서양에서도 밤꽃 향기는 ‘남자의 향기’에 비유된다. 평소 새침떼기 여인도 밤나무 숲을 함께 거닐면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말이 있다.
‘6월 신부(June Bride)’라는 말이 있듯이 6월은 미국 처녀들이 엄청 선호하는 결혼 달이다. 1948년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가 주연하여 대히트한 ‘6월 신부’ 영화도 있다. 남성의 꽃인 밤꽃이 만발한 6월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달 밝은 밤, 하얗게 핀 밤꽃과 유월 뙤약볕 아래 뿜어대는 향기. 그 향기는 유월의 열기에 따라 온 산야를 뒤덮는다. 밤꽃 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벌과 나비도 한번 맡고 나면 취해서 잘 날지 못한다고 한다.
옛날 부녀자들은 밤꽃 필 때는 외출을 삼가 했다고 한다. 그 진한 밤꽃 향기는 과부를 괴롭히는 꽃이라 해서 그 꽃 냄새를 알고 맡으면 처녀가 아니고 과부라고 했다고 한다.
栗花香氣己知女(율화향기기지녀) 밤꽃 냄새 이미 알고 있는 여자는
子曰必稱非娘子(자왈필칭비낭자) 필시 처녀가 아니라고 말들 하지
栗花香氣滿開洞(율화향기만개동) 밤꽃 향기 온 동네 진동하니
萬洞寡婦艶情分(만동과부염정분) 온 동네 과부 바람난다네.
促歸家婦臀芳走(촉귀가부둔방주) 집으로 가는 아줌씨들 발걸음 더욱 빨라지고
寢入內子弄鼻鳴(침입내자농비명) 잠자리 드는 마누라 콧노래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네.
‘밤꽃 향기가 진동하면 과부는 잠을 못 이루고 멀리 떠난다’는 속담도 있다. ‘빨래를 하던 과부가 바람을 타고 온 밤꽃 향기를 맡고는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을 떠올리며 그날 밤 새 남자를 맞이했다’는 옛날 얘기도 있다. 아카시아 꽃이 여성의 향기라면 밤꽃은 남성의 향기이다.
밤꽃 향기는 남자의 정액 냄새와도 흡사하다고 하여 밤꽃 냄새를 양향(陽香)이라 불렀다. 그래서 밤꽃 필 때면 부녀자들은 외출을 삼갔고, 과부는 더욱 근신을 하였다고 전해 온다. 밤꽃 피는 6월은 젊은 과부에게 잔인한 달이며, 외로운 여인에게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지는 시련의 달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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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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