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매미가 돌아왔다. 하루아침에 낯선 세상에 놓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해 2004년, 듣도 보도 못한 매미 떼가 출몰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어버리고 다닥다닥 징그러운 모습으로 나무에 빽빽이 붙어서 누가 누가 소리를 크게 지르나 시합이라도 하는 양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실제로 그 소음이 비행기 소음과 맞먹는다고 하고 그 이유는 짝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라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짝을 찾는 행위는 가히 전투적이라 할 수 있고 누구보다 크고 멋져야 미인을 쟁취한다는 이치는 시공을 초월한 본성임을 알 수 있다.
'X종 매미'라 불리는 이 매미 떼는, 긴 잠을 끝내고 땅에 올라와 먹이를 찾고, 실컷 울다가, 짝짓기로 생을 마감한다.
올해 2021년에 나타난 매미는 2004년 산란된 것으로 그해 7~8월 부화했다. 새로 부화된 유충들은 땅으로 떨어졌고, 이듬해 1월 무렵엔 지하 20~30cm까지 들어가 그곳에서 뿌리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17년간 살아남는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매미들은 땅속에 있는 기간 내내 곰이나 다람쥐처럼 겨울잠을 잔 게 아니라 정말, 정말, 정말 천천히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년도, 10년도 아니고 왜 하필 17년이라는 생애주기를 가졌을까?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과학적인 추론은 '생존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땅속에서 지내는 기간을 단 하루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17년을 계산해서 채운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매미가 이 일정에 맞춰 나오는 건 아니고 한국 매미처럼 1년마다 땅으로 올라오는 매미도 있고 13년마다 올라오는 매미도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17년 전 분명 그들은 아기였을 것이고 먹이를 찾아 땅으로 들어가 땅의 영양분을 먹으며 온갖 땅 밖의 소리를 귀로만 들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드디어 17개월도 아니고 17년이라는 기나긴 인내의 시간이 흐르고 몇억 마리가 동시에 혹성 탈출하듯 땅속 나라에서 탈출한다.
한꺼번에 모두가 지상으로 나온 매미는 본능적으로 짝을 찾기 위해 17년 동안 귀로만 들었던 지상의 모든 소리를 이제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소리로 낸다. 가장 크게 소리 내는 매미가 가장 매력적인 수컷으로 등극 된다.
갑작스러운 매미의 출현으로 우리 집 숲속 동물들도 흐름이 바뀌고 있다. 매일 늦은 아침에 한가롭게 잔디밭을 걸어 다니며 풀을 뜯어 먹었던 사슴 가족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푸른 나무들 사이를 바삐 뛰어다니던 숲의 전령사인 다람쥐의 놀란 뒤태가 금태가 되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 녀석들을 쫓는 우리 강아지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랬던 우리 정원이 매미 소리로 가득 찰 무렵... 정원의 소리를 담당했던 이쁘고 작은 새들이 베란다 밑 천정에 둥지를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틀고 있었다.
새들의 둥지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봐 왔던 터라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황금 시기가 없다는 걸 새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아기새에게 물어다 줄 영양 만점인 먹이들이 저항도 없이 여기저기 쌓여있는데 이처럼 쉬운 양육을 머리 좋은 새가 포기할 리가 없다.
역시 새대가리가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미가 숨죽이고 조용히 몸집을 아주 조금씩 키우며 살았듯 나 또한 조용히 숨죽이며 이곳에서 살았다. 다만 난 지상에서 조용히 내가 산란한 아이들을 양육하며 살았고 매미는 지하에서 홀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조금씩 몸을 불리고 있었다.
어쩌면 매미도 나처럼 땅속 세상이 타향살이라 그처럼 조용히 오랜 세월을 견디었을까? 매미의 리그에서 이처럼 소리 내고 장렬히 전사하는 걸 보면 나 또한 같은 길을 걸을 거라는 암시를 받는다.
17년이 흐른 오늘 나는 아이들의 웃음에 소리 내어 감사함을 전하고, 묵묵히 땅속을 지킨 매미는 오늘 소리 내어 짝을 찾고 아이를 잉태한다. 인간의 시간과 매미의 시간이 함께 흘러 짝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시대를 살아간다.
운 좋게 짝을 찾는다고 해도 성충으로 살아가는 날은 겨우 4주 정도다. 누가 그랬던가? 인내는 험하고 결과는 달콤하다고...그러기엔 매미의 17년 대 4주는 너무 가혹하다. 탈골된 빈 껍질만이 무덤을 이루고 있어 영혼과 육신이 나가버린 딱딱한 수의만 남은 빈 관 같은 모습이라 섬뜩하기까지 하다.
나무 둥지에서 부화된 애벌레들은 땅속으로 다시 들어가 17년 동안 몸집을 키우고 숨죽여 살아남았다가 또다시 땅 밖으로 나올 것이다. 17년 후가 될 테니 2038년이 되어야 지금의 유충이 성충으로 자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나이는 70세가 될 텐데 그때가 되어 또 이런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반가워 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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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수필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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