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코비드 대재앙지가 되면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해리스는 인도계 미 이민 역사상 최고위직에 오른 정치인. 2020 대선 캠페인 때부터 인도 커뮤니티는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는데, 막상 부통령이 된 후 해리스의 행보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이다.
인도는 코비드 생지옥이라고 할 만큼 인명피해가 크다. 지난 2월말부터 보고된 확진 케이스가 2,600만 건을 넘고, 사망이 30만7,000건을 넘었다. 5월의 어느 날에는 하루에 4,500명이 사망해 세계기록을 세웠다. 의료시스템은 붕괴되고, 병원은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매일 수천명씩 죽어나가며, 화장 또한 제때 할 수 없으니 갠지스 강에는 수백구의 시체들이 떠다닌다고 한다.
그 처참한 상황이 미국에 사는 인도계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도에 사는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지 중 적어도 한사람은 확진되었거나 사망했다.
고국의 비통한 상황을 보다 못한 인도계가 ‘인도 구호’ 탄원에 나선 것은 4월말이었다. 각계에 포진한 인도계 인사들이 백악관 등 주요 부처에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며 인도에 대한 의료지원을 촉구했다. 연방의회의 인도계 의원 4명 역시 “인도를 돕는 것이 미국의 도덕적 책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백신, 항체 치료제, 산소호흡기 등을 공급하며 긴급지원에 나선 이면에는 인도 커뮤니티의 간절한 호소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절박한 시기에 해리스는 너무 잠잠했다는 것이 인도계 일각에서 쏟아지는 비난이다. ‘인도의 딸’인 해리스가 인도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서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는 서운함이다. 해리스는 지난 7일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 지원대책을 발표하기 전까지 공식석상에서 인도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소수계가 고위 선출직에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쉽지 않은 과제가 있다. 선거구 전체주민을 대표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소수인종/민족의 권익을 옹호하는 일이다. 한인사회가 선거 때마다 한인후보들을 위해 선거기금을 모으고 표를 몰아주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서다. 정책결정의 현장에서 우리의 필요를 전달할 대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인 정치인들 역시 한인사회의 이런 바람을 모르지 않는다.
부통령으로서 해리스는 바이든의 리더십을 보좌하며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편 핏줄의 나라인 인도의 필요 사이에서 고심했을 수 있다. 어머니의 모국이자 이모와 외삼촌이 사는 인도에 애정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도 커뮤니티는 민주 공화 양당이 공을 들이는 집단이다. 표와 돈을 가졌기 때문이다. 20년 전 200만이던 인구는 450만으로 늘어나 이민 집단 중 멕시코에 이어 2번째고, 가구당 중간소득은 10만 달러(2015년 기준)로 미 전국 평균의 2배에 달한다. 그만큼 정치력 신장에 대한 열의가 강하고 기부금 규모가 크다. 기록적 기부가 이뤄진 것은 지난 9월 바이든-해리스 대선 후보팀 후원행사. 단 한번 행사로 기부한 액수가 무려 330만 달러였다.
해리스에 대한 자부심은 인도에서도 대단하다. 지난 1월 그의 취임을 앞두고 해리스의 외조부 고향에서는 마을주민들이 그의 사진을 들고 힌두사원에 모여 기도회를 열었을 정도다. 그렇게 성원했던 해리스가 인도 사태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게 인도계 주민들에게는 상처가 된 것이다. 한편 해리스가 공식석상에서는 입을 열지 않았어도 백악관 관련회의에서는 틈틈이 의견 개진을 했다는 후문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역시 흑인 커뮤니티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과감하게 지적하던 흑인 대통령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면서 흑인사회는 당장이라도 미국이 변할 것 같은 기대감에 찼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오바마는 기대만큼 흑인 이슈에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는 섭섭함이 흑인사회에 있었다. 민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는 “(오바마가) 백인인양 행동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잖아도 당시 백인사회는 흑인이 백악관을 차지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오바마가 대놓고 흑인 편을 들었다면 정국이 얼마나 어지러웠을 것인가.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한인사회에도 연방의회, 주의회, 시의회 등지로 진출하는 정치인들이 속속 늘고 있다. 소외와 차별의 역사를 견딘 소수인종/민족에게 ‘우리’ 정치인은 중요한 자산이다. 그들이 커뮤니티의 필요를 바로바로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인이 특정그룹만을 위해 일할 수는 없고 그런 인상은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한인 정치인들이 먼저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 인정받을 때 한인사회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힘을 얻을 것이다. 멀리 내다보는 긴 안목은 ‘우리’ 정치인에 대해서도 필요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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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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