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구경한지 오래됐다. 아니, 결혼식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지 오래됐고, 오래됐다는 걸 실감 못한지도 오래 됐다. 청첩장이 쏟아져 들어와야 할 연중 최고의 웨딩 시즌이지만 단 한 건도 없다. 친구나 친지들이 대부분 자녀들을 오래전에 출가시켰고 손자손녀들은 아직 적령기가 아니기 때문일 터이다. 교회 주보에도 부음광고는 매주 줄지어 올라오는데 결혼식 광고는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그간 청첩장을 가뭄에 콩 나듯 봤던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 결혼식이 가족들 사이에만 치러지거나 연기되는 게 일쑤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신랑신부가 올릴 예정이었던 결혼식 중 거의 절반(49%)인 110여만 건이 연기됐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결혼식이 전해에 비해 10.7%, 사상 최대치였던 1996년의 43만여 건에 비해서는 반 토막인 21만4,000여건으로 감소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팬데믹이 아직 안 풀렸지만 미국 결혼업계는 금년에 사상최대 호황을 누릴 것으로 기대에 차 있다. 지난해 결혼식을 연기한 커플 중 약 30%가 올해 혼례를 치러 전체 결혼건수가 예년 평균치보다 65만여 건 늘어난 277만여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결혼비용도 평균 2만1,600달러로 작년의 1만9,900달러보다 소폭 올라 올해 미국 결혼업계 총 수입이 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달부터 결혼 러시가 터질 수 있다. 6월은 ‘June Bride’(6월 신부)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 처녀들이 엄청 선호하는 결혼 달이다. 역대 최고여배우로 꼽히는 베티 데이비스가 주연한 ‘6월 신부’가 70여년전 히트했다. 뮤지컬 ‘7인의 신부’에서도 한겨울에 나무꾼 7형제에게 산골로 납치돼온 처녀 7명이 봄이 돼 꽃이 피자 “6월에 결혼하는 신랑은 마음속 연인을 신부로 맞는 대요”라며 형제들을 꼬드긴다.
나도 6월 결혼식을 10여년 전 시애틀의 바닷가 언덕 위 신록이 우거진 공원에서 주례했다. 엘리엇 베이(시애틀 항)의 쪽빛 바다에 두둥실 뜬 페리와 그 너머로 뾰쪽 솟아오른 스페이스 니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쏟아지는 초여름 햇살 아래 그림엽서처럼 멋진 시애틀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선 6월 신부의 청초한 자태에 홀렸는지 노총각 신랑은 그녀 앞에서 세레나데를 두곡이나 열창했다.
미국(서양) 여성들의 6월 결혼식 선호 전통은 중세시대 유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 세상이었던 당시에는 사순절 기간에 결혼이 금기시 됐다. 대부분 이른 봄철에 해당한다. 성당의 신부가 신도들에게 결혼식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 후 세 차례 주일예배에서 이의여부를 묻는 절차도 통과해야 했다. 자연히 결혼식은 부활절을 지나 6월에 러시를 이루게 됐다.
실리적 계산도 작용했다. 신부가 6월에 결혼하면 다음해 4월에 출산하고 두어 달 조리한 후 여름철 시집식구들의 농사일에 동원될 수 있었다. 또 중세시대엔 위생관념이 지금과 정반대여서 사람들이 목욕을 자주 안 했다. 평민여성들은 1년에 한번 뿐인 목욕을 대개 날씨가 따뜻해지는 늦봄까지 미뤘다. 그때쯤 흐드러지게 피는 들꽃으로 결혼식 부케나 화관을 만들어 몸 냄새를 꽃향기로 감추기도 했다.
요즘엔 엄동설한의 밸런타인스 데이 결혼식이 유행이라지만 팬데믹 때문에 혼인을 1년간 연기한 예비부부들이 내년 2월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지루하다. 다음 달 각급정부가 팬데믹 제한조치를 풀자마자 결혼식이 러시를 이룰 터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전문예식장 결혼식이 아닌 공원·학교캠퍼스·골프장·운동장 등 야외 결혼식이 비일비재이다. 이런 장소에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도 용이하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던 미국의 신랑신부들 중 거의 전부인 96%가 계획을 조정하거나 연기했다. 나머지 4%만 원래 예정대로 결혼식을 치렀다. 팬데믹이 터진 3월 이전일 터이다. 결혼식 계획을 조정한 커플 중 88%는 예식장·피로연·사진촬영·꽃 장식·신혼여행 등 모든 스케줄 계약을 이미 완료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 중 결혼식을 영원히 취소한 커플은 하나도 없었다.
올해 결혼식을 올리는 한국의 청춘남녀들도 물론 작년보다 많아질 터이다. 하지만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족’이 늘어나면서 결혼률은 해마다 줄어든다. 팬데믹이 아니라 돈이 문제다. 결혼식 비용이 평균 2억3,000만원이고 그중 주택비가 1억9,000만원이다. 대부분 아파트 전셋돈이다. 마이 홈을 마련하는 게 신혼커플엔 하늘의 별 따기다. 2030세대가 괜히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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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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