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 한 번 샤워를 한다. 아침에 샤워를 하면 저녁에는 세수만 한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고 중간에 또 땀이 난다고 ‘중간 샤워'까지 한다는 사람을 보면 난 고개를 갸우뚱한다. 거기에 틈나면 사우나에 가서 몸을 푼다는 사람을 보면 갸우뚱을 넘어 이상한 엘리스의 나라에서 온 것처럼 나와는 딴 세상 사람이지 싶어진다. 집 밖에서 활동하며 각종 오염에 덮인 몸을 닦아내야 하는 차원에서 저녁에는 꼭 샤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으나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더러운 오염에 노출되는 부위가 얼굴과 손, 발이지 몸 전체는 아닐뿐더러 그렇게 생각하면 옷에서부터 신발까지 세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여름의 땀범벅일 때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시도 때도 없이 차가운 물로 즉시 씻어 내야 하고 그 끈적임을 지속할 필요는 없지. 이 글의 중심은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에 이르는 계절에 해당되는 글임을 먼저 밝혀야겠다.
지금은 선선한 봄이다. 아침저녁으론 꽤 쌀쌀하지만, 낮에는 에어컨을 켤 만큼 더운 날이 며칠째다. 누군 갱년기라 몸의 온도가 왔다 갔다 한다고 하고 누군 나이가 들어 양기가 하필 몸으로만 온다며 마치 사춘기 소녀들이 개똥 굴러가는 모습만 보고도 깔깔거리며 웃는다더니 요즘 우리 여자들의 봄 타는 아니, 몸 타는 계절이 바로 지금이라 무슨 말이든 깔깔거리며 이제는 찔끔거리며 배를 움켜잡는다.
봄 타는 중년에 웬 샤워 타령이겠나 하겠지만, 오늘 친구들과의 주제는 ‘당신은 하루에 몇 번 샤워를 하느냐'였다. 나는 솔직하게 하루에 한 번 한다고 말했고 대부분은 하루에 두 번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틀에 한 번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날도 추운데 무슨 하루에 한 번이냐며 또 한바탕 웃긴 웃었지만 실제로 나도 할 말은 없었다. 나 또한 일을 나가지 않는 주말에는 어물쩡 넘어가고 하루종일 파자마를 입고 뭉개는 날도 허다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키울 때도 목욕이 문제였었다. 태어나자마자 꼭 하루에 한 번 목욕을 시켜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대로 처음엔 열심히 했지만 지나고 나니 참 어이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히 누워 우유만 먹는 아이가 얼마나 분비물이 많다고 특히 응아를 하면 어차피 아랫도리는 왕창 따뜻한 물로 씻기고 닦이는데 굳이 저녁에 배꼽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행여 놓칠세라 모든 신경을 쓰며 씻겼는지. 아이는 싫다고 울고 엄마는 땀범벅이 되어 울고 이래저래 저녁마다 한 차례씩 전쟁을 치르고 기진맥진했었다.
꼭 해야 하는 일과 중의 하나라는 점을 한 점 의심 없이 매일 씨름하며 받아들였다. 아무리 추운 계절이라도 저녁참에 방안 전체를 절절 끓게 만들어 놓고 크나큰 의식을 치르듯 목욕을 해야 그 하루해가 넘어갔었다.
하루 거른다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셋째를 낳고서야 알게 되었으니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그리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지배할 줄 몰랐다.
샤워의 장점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아기 때의 트라우마가 어른이 되어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라 물에 대한 공포로 수영을 못한다거나 좋지 않은 무의식으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적도 있어서 여러모로 꼭 필요한 1일 1목욕은 지양해도 될 듯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새내기가 있다면 깨끗한 어른들의 육아일기만을 고집하지 말고 나처럼 어물쩡 넘어가는 육아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몸의 수분이 급속도로 빠져 나가 피부가 건조해지므로 샤워를 한 뒤에는 반드시 보습제를 발라 주어야 한다. 이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과 구매를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한 일인지, 어디선가 이런 글도 읽은 적이 있다. 아토피 피부염에 좋은 습관은 물의 접촉을 되도록 하지 말라고 하는데 억측 같지만 분명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샤워에 대한 약간의 강박관념이 생겼나 뒤집어 생각해보니 여자가 저녁에 샤워를 하면, 남편들이 무서워서 일단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간다는 웃지 못할 말이 있었다.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저녁 샤워는 색을 밝히는 여자지 싶은 염려에서 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긴 듯 해 설마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원인임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미국에서 아기를 낳으니 그날 바로 샤워를 하라고 해서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물론 나는 병원에서 찬물에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문화가 다르면 물을 대하는 시선도 다르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몇 해 전 수술을 한 다음 날 몸도 가누지 못하는데 기어이 휠체어에 태우고 욕실에 앉혀 샤워기로 물을 내 몸에 뿌려대는 간호사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난 1일 1샤워를 그것도 주중에만 하지만 당신은 샤워를 어떻게 하는지…. 참 별개 다 궁금한 봄 타는 아니, 몸 타는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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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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