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인종증오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에서의 아시안 차별은 이미 1870년 이래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아시안 토지소유 제한령’, ‘귀화 차별법’, ‘시민권·영주권 발급 심사 강화법령’ 등등 직·간접적으로 아시안들의 미국 진출이 견제 또는 제약을 받아 온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구상에 인구가 늘어나고 종족 간에 종교, 정치, 경제, 문화 교류가 시작되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마찰, 증오로 반추해 보기조차 민망한 참극이 일상처럼 이어져 왔던 게 사실이다.
새삼 우리 인류에 예수나 석가모니, 마호메트, 간디, 마더 테레사 같은 인물들이 없었더라면 무지몽매한 짐승들 앞에서도 인간이 더 우세하다는 면목이 있을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인간을 포함,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은 경쟁이요, 상쟁이다. 살아 남아 종족 보존을 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영역을 표시하고 침입자를 죽인다. 갈나무와 등나무도 부딪치기만 하면 좌우로 뒤엉켜 다툼의 상징으로 ‘갈등’이란 단어가 생겼을 정도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증오 범죄’가 점증하고 있는 징조가 심상치 않다. 조기에 근본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 사단이 증폭될지 한편 불길한 예감도 든다.
미국에서의 아시안 증오의 발단은 일본의 미국 배신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과분한 자원 후원을 받은 일본이 갑자기 돌아서서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못 믿을 아시안’ 선입견을 미국인들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다. 그리고 미국 내 일본인들을 콜로라도, 샌호세 등지로 집단 강제 이주 시켜 격리 수용했던 사실이 있다.
미국 대륙 철도 건설에 동원됐던 중국 노동자(쿠리)들의 비위생적이고 서양인들과 판이하게 다른 생활 습성도, 주류를 이룬 서양인들의 혐오감도 아시안 비하에 한몫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인종 증오 범죄 사건들은 1. 아시안들의 경제, 문화, 학계, 정계 분야에의 활발한 진출에 더하여 중국의 패권 도전으로 야기된 백인 세력의 긴장 및 경계심 2. 미국 내 아시안들의 급격한 성장에 대한 흑인, 히스패닉 등의 보이지 않는 압박감과 시기, 질투 등의 혐오감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인이 되라’는 격언처럼 미국에서 살려면 미국과의 동화에 노력하는 것만이 증오 대상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처지에 본토인들의 기득권을 뛰어넘으려는 무절제한 태도는 미움을 사기 십상이다. 아시안들의 미국 내 경제 안정은 중도 수준을 넘을 기세다. 비교적 저소득층인 흑인, 스페니쉬 앞에서 과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겸손하며 두터운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과거 가난했던 아시안들이 생활이 좀 윤택해졌다고 해서 보석 장식품, 의복에 최고급 승용차, 호화주택에 살며 설치는 그런 꼴을 보는 상대방의 심성이 뒤틀릴 것은 쉽게 상상되는 일이다.
솔직히 아시안들은 타민족에 대한 멸시와 툭하면 모멸감을 안기는 습성, 그런 사고는 없었는지 반성해 볼 일이이다. 과공비례(지나친 겸손은 불손이다), 겸손하되 비겁하지 않은 선에서 의연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타민족의 아시안에 대한 인식전환도 중요 과제다.
또한 우리 한국 동포들이 미국 내 인종증오 분위기에 너무 나서서 열을 올리고 선동하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충고하고 싶다. 현재의 증오범죄는 중국이 주 대상이다. 중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 대국이 되었는데도 세계 패권에 도전해 오자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로 중국을 지목하여 ‘우한 바이러스’로 국민을 선동, 아시안 증오 발단이 된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인들 눈에는 나라 구별 없이 아시안을 모두 한 통속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동포들이 특별히 앞장서 타깃이 되는 것이 현명한 처사는 아닐 것이다.
미국 상원은 아시안 증오를 범죄(Crime)와 사건(Incident)으로 분리 심의하여 94대 1로 통과시겼다. 법적인 조치가 취해진 만큼 효과를 볼 것이라 믿는다.
인종 화해 역사로는 숙적이던 독일과 프랑스 간의 사례가 있다. 2차 대전 후 독일 수상 아데나워는 80세가 넘은 나이에 일곱 번이나 거절 당하면서도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찾아가 기어이 화해를 이루어냈다. 지도자 두 사람만의 화해는 진정한 화해가 아니라고 해서 두 나라 지도자는 국민들 앞에 으레 손 잡고 나타나는 관례를 만들었다.
모두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사례이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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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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