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우리 안에 숨어있던 미치광이들을 풀어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만들어낸 아수라장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과학을 해체했고, 수북한 잔해더미를 뒤져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폐기해야할 부스러기들을 자의적으로 추려냈다. 학문적 연구 결과보다 요란스런 개인의 진술에 수시로 휘둘린 것 역시 사실이다.
일반인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전문가들마저 이 같은 비합리적 행동에 합세한 것은 분명 우려할 만한 일이다. 존슨 & 존슨의 백신 배포를 중단키로 한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연방식품의약국(FDA)의 결정을 떠올려보라. 존슨 & 존슨 백신을 접종받은 700만 명 가운데 심각한 혈전 사례는 CDC와 FDA의 결정이 나올 당시 단 6건(지금은 9건)에 불과했다. 확률로 보면 0.0001%이다.
반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코비드-19 환자의 사망률은 1.5%다. 다시 말해 혈전을 일으킨 환자 전원이 숨졌다 해도 백신접종보다 코비드-19 감염에 따른 사망위험이 수천 배나 높다는 얘기다. 물론 접종 후 혈전증을 일으킨 환자들은 거의 모두 살아있다.
CDC와 FDA의 발표는 지난 3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후 일부 혈전 부작용 사례가 발생하자 유럽 국가들이 일시적으로 백신접종을 중단한 뒤에 나온 것이다. 존슨 & 존슨과 유사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만들어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혜택은 잠재적 위험을 크게 앞지른다.
유럽 국가들의 접종 중단은 백신의 안전성에 관한 두려움에 기름을 부으면서 음모론을 영구화하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데 손을 보탰다. 접종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중요한 시기에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접종 중단은 나라 밖에까지 파장을 일으켰다. 대다수의 개발도상 국가들은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mRNA 백신보다 저장이 용이하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 & 존슨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 논란이 불거지고 접종중단 발표까지 이어지자 이들 국가에서도 백신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 문제는 일정한 패턴을 지닌다. 지극히 낮은 백신 부작용 확률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과 정부들은 행여 그들의 임기 중 불상사가 발생할세라 노심초사한다. 팬데믹보다 백신접종 부작용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기 꺼려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제까지 나온 숱한 연구결과는 방역과 예방조치만 제대로 취하면 등교에 따른 위험부담은 지극히 낮다는 쪽으로 모아졌지만 정치인들과 관리들은 한사코 몸을 사린다. 위험이 크게 과장된데 비해 학교들이 다시 문을 열 경우 어린이들과 부모, 경제 전반에 돌아갈 혜택을 생각하는 정치인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위험에 대한 이 같은 집착은 애틀랜틱지의 데렉 톰슨이 말한 ‘위생 연극’(hygiene theater)으로 전환된다. 바이러스가 접촉보다 호흡을 통해 전파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기본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살균제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공을 들였다. 식탁을 깨끗이 닦기만 하면 실내에서 식사를 해도 안전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양새였다.
위생 연극은 9/11 이후 전국의 공항에서 일제히 막을 연 ‘보안 연극’(security theater)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국내의 크고 작은 모든 공황에서는 반입이 금지된 물병이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장면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이처럼 여행객들을 안심시키려는 세세한 안전조치들이 취해졌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테러위험에 대한 집착이다. 사실 9/11 사태 이후에도 테러위험은 지극히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테러 과민증은 국토안보와 관련한 방대한 산업복합체를 만들어냈고,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한 무력개입으로 이어졌으며 테러발생 가능성을 제로에 가까이 끌어내린다는 명목 아래 시민적 자유를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단 한 명의 테러분자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에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미국 입국희망자들의 비자가 거부됐다. 정부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예방조치를 취하고 이를 위해 아낌없이 예산을 지원하는 모습을 연출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언론에 의해 매도를 당하거나 의회 상임위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의례적인 격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팬데믹의 초기 단계에 미국 정부는 신속한 대량 검사로 인해 확진건수가 늘어나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는데 따른 막대한 이익 따위엔 눈꼽만한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시 하버드대학 역학자인 마이클 미나는 누가 안전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정보를 일관되게 제공하기 위해 집에서 하는 임신진단 검사처럼 간편한 기구를 이용한 코비드-19 자가 테스트를 비롯, 모든 종류의 진단검사를 승인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00% 정확한 진단결과를 얻는 것보다 코비드-19가 확산되기 전에 신속히 잡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늘 리스크를 안고 살아간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매년 거의 4만 명이 차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렇다고 제한속도를 시속 25마일로 낮추면 사망자 수가 반으로 줄어들까?
지금도 미국에서는 매일 수백 명이 코비드로 숨진다. 이에 비해 J & J 백신을 맞은 후 혈전증을 일으킨 접종자는 단 아홉 명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좀 더 세밀하고 주의 깊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우리가 감내해야할 리스크를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위험부담(risk)과, 팬데믹 방정식의 나머지 반쪽인 보상(reward) 사이의 균형을 정확히 잡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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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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