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은 세계 교통 역사상 기념비적인 해다. 그 해 5월 10일 센트럴 퍼시픽 철도회사 사장인 르랜드 스탠포드는 유타 프러먼토리 서밋에서 은 망치로 ‘황금 대못’(Golden Spike)을 박았다. 이로써 사상 처음 미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대륙간 철도가 완성돼 서부 개척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그해 11월 17일 있었던 수에즈 운하의 개통이다. 지중해 연안 사이드 항에서 홍해의 수에즈까지 120마일에 달하는 이 운하가 뚫림으로써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뱃길은 5,500마일이 줄어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운하의 개통이야말로 동양과 서양을 한데 묶을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운하를 만든 사람은 페르디낭 드 레셉스라는 전직 프랑스 외교관이다. 토목이나 재정에는 문외한이고 프랑스 인인 그가 어떻게 이런 대업을 이룰 수 있었을까. 프랑스가 이집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부터다. 그는 이 때 160여명의 학자들을 대동해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 풍토 등을 연구하게 했는데 이로부터 프랑스에는 이집트 붐이 불기 시작했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 역할을 한 로제타 스톤도 이 때 발견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32년 27살의 레셉스는 알렉산드리아 부총영사로 발령받아 이집트로 온다. 그는 당시 이집트의 태수 무하마드 알리의 신임을 얻어 그 아들 사이드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사이드는 스파게티 같은 파스타를 즐겼는데 날로 비대해지는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했던 아버지는 레셉스에게 이를 먹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린다. 그러나 레셉스는 아들이 몰래 먹는 것을 묵인해줬고 이 일로 둘은 급속히 가까워진다. 수에즈 운하의 강력한 주창자였던 프로스페르 앙팡탱과 만나 운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도 이집트 체류의 큰 수확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레셉스에게 뜻밖의 불행이 닥친다. 1849년 이탈리아 분쟁 책임을 지고 로마에 파견되지만 프랑스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억울하게 외교 실패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을 강요받는다. 설상가상으로 1853년에는 사랑하던 아내 아가트와 아들 페르디낭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이집트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온다. 알리 사후 이집트를 통치하던 압바스가 암살되고 레셉스의 옛 절친 사이드가 전권을 물려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레셉스는 즉시 이집트로 달려가 사이드와 만나 수에즈 운하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운하 공사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는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는 우선 전문가를 불러 모아 어느 노선이 가장 경제적이고 비용과 시간은 얼마나 드는지를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는 이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투자자들을 끌어모아야 했고 이해 당사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가장 레셉스를 힘들게 한 것은 영국이었다. 특히 당시 영국 총리였던 파머스톤은 프랑스인에 의해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없다며 결사반대를 외쳤다. 결국 이 운하는 그가 죽은 뒤 완성됐다.
그러나 후원자도 있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였다. 원래 운하 건설에 호의적이었던 그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로의 최단 노선 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레셉스를 전폭 지원했다. 그의 아내 외제니가 레셉스의 사촌동생이었던 점도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10년간의 난공사 끝에 1869년 수에즈 운하는 완성됐고 레셉스는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사이드의 뒤를 이은 이스마일은 이 운하가 이집트에게 영광과 돈을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로 막대한 빚을 내 지원해줬지만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운하 회사 주식을 모두 영국에 넘기고 축출당했으며 이집트는 영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운하가 완성된 후 64세의 나이로 21살짜리 부인을 얻어 12명의 자식을 낳은 레셉스는 영웅 대접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대신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도전했다 전 재산을 날리고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아들과 함께 5년형에 처해지지만 노환을 이유로 형 집행을 면제받고 1894년 쓸쓸히 사망한다.
최근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서 물류 대란이 일어난 데서 알 수 있듯 수에즈 운하는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운하 건설은 이를 꿈꾼 사람들이 원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하늘이 사람을 벌하려 할 때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