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 버지니아주 주지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미국 내에서의 ‘아시안 증오’에 대한 경각심이 한창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주지사가 아시안 커뮤니티, 특히 한인사회와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참석자가 약 15명 정도로 제한되어 있던 이 모임의 참석 요청은 바로 전날에서나 있었다. 담당자가 전화를 해 왔다. 그 모임 초청을 처음에는 잠시 망설였으나 받아들였다.
사실 랠프 노담 주지사와 다시 가까이에서 대면하는 것은 3년이 넘었다. 그러니까 주지사가 4년 전 선거에서 당선된 후 처음인 것이다. 그 사이에 그가 참석하는 행사를 일부러 피했다.
주지사가 선거 전에 나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나는 그 동안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주지사는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 있다. 대화할 기회 자체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번 모임에는 참석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시안에 대한 증오와 차별 등의 이슈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는데 사적인 감정을 내세워 거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만나 나름대로 건의해야 할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모임에 대비해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어 고민하다가 주지사의 인종차별 대처 정책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지난 2월 말에 발표된 ‘One Virginia Plan’이라는 것이 내 눈을 끌었다. 약 35페이지 정도 되는 이 플랜을 훑어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내가 교육위원으로 있던 때인 2017년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와 수퍼바이저위원회가 오랜 논의 끝에 공동으로 채택한 ‘One Fairfax Policy’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회와 수퍼바이저위원회 모두 ‘다양성, 형평성 그리고 포용성’의 중요함을 인식해 카운티 교육과 일반 행정에 있어 그 점들을 반영하도록 결의한 것이다. 그런데 One Virginia Plan은 이 같은 점들을 주정부 차원으로 승격시킨 모양을 취한 것이다.
주지사는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얘기를 해 주었을 때 처음 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사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플랜이 아무리 좋아도 실제로 집행이 안 되면 소용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행을 해야 할 정부 기관이나 교육기관에 책임을 추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플랜이 아시안 커뮤니티에도 똑같이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즉, 우리가 소수 인종을 위한 ‘다양성, 형평성 그리고 포용성’ 요소들의 제고를 얘기할 때 아시안 커뮤니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특히 그 플랜에 우선적으로 나와 있는 것처럼 인사에 있어 그 요소들을 중요시 여긴다면 주정부와 산하 기관에 과연 아시안들이 어느 정도 고용되고 발탁되는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수 인종에 대한 배려가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아시안들의 고용, 발탁 비율이 과연 버지니아 주 전체 인구에 아시안 주민이 차지하는 비율 만큼이라도 되는지 모니터링 해야 할 것이라고 요청했다.
덧붙인 것은 그 플랜을 준비한 Executive Steering Committee 멤버들의 구성 면모를 보니 다양성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단 한 명만 빼 놓고 모두 흑인으로 구성된 듯한 이 위원회의 멤버들이 개인적으로는 모두 인품과 능력이 뛰어날 수 있지만 다양성과 형평성을 추구하는 취지를 갖는 플랜 준비 작업을 하는 그룹에 바로 그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그룹의 리더로서 버지니아 주 정부 내에서 장관급인 ‘Chief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Officer’ 직책을 맡고 있는 흑인인 제니스 언더우드 박사가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어 그의 면전이지만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 말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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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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