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추구하는 선은 공동체마다 상이할 수 있다. 칸트에서 밀까지 자유주의 전통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받아들였다. 정의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회 균등을 보장받는 평등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부자들은 능력을 인정받는 불평등이 곧 정의라 생각한다. 평등에 대한 이러한 견해 차이는 공정과 차별로 인식되어 서로 투쟁한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러한 갈등에 ‘통합 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지점에서 이들이 겨냥하고 있는 건 하버마스 정치철학이다. 정치의 근원은 투쟁과 경쟁 상태이지만 자기 가 치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상호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통의 상식을 형성하려는 시도가 바로 정치이며 인간은 생물적인 본능이나 충동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공론의 장’을 통해 대의민주주의 대안으로 자율적 통합의 ‘토의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정치이론에서 악은 부패·비겁·연약·우둔·거친 것을 말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에 비겁했고 정적에 우둔한 짓을 했다. 악은 윤리적 의미에서 사악함이지만 정치에선 불안·위험·협박·탐욕을 방기하는 것이 악이다.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하는 부동산 폭등은 청년세대와 서민에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빼앗아 버렸다. 의·식·주는 루소가 말한 원초적 ‘자연상태’이다. 사회상태란 통치상태를 말한다.
주거는 인간 생활의 보금자리이다. 이곳은 짝을 짓고 알을 낳아 자식을 보호하는 장소이다. 사회상태가 자연상태를 침해한 것이다. 자연상태에서 소유권 박탈은 곧 전쟁이다.
정치에서 민심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민심이 떠나면 그 어떤 변명이나 구걸도 통하지 않는다. 상처와 배신감은 감정의 영역이어서 그곳에 이성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동물의 협동은 자연적이지만 인간의 화합은 인위적인 믿음의 약속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불안·위험·협박·탐욕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신약은 깨진다.
이번 선거 결과는 정권 심판이나 거짓말의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 존재 자체가 희망이 없다는 현실적인 불안과 절망에 대한 의사 표출이다. 공정사회는 부동산 폭등으로 붕괴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도덕·인물·정책의 전통적 선거 이슈는 보금자리 울타리에 갇혀 버릴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이었다.
먹고 사는 자연상태는 루소가 말한 대로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는 ‘일반의지’에 속한다. “일반의지는 항 상 옳다. 그래서 일반의지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루소는 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념이나 철학에 집착하지 말고 먹고 사는 민생 정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사회전반에 기생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에도 함께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정치 경험에서 느끼게 된 것 중의 하나는 존 로크·몽테스키외·제임스 매디슨 등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얘기하고 권력의 견제에 대해 얘기했던 이론들이 그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는 사실 이다. 공직은 명예이다. 시민 개개인의 이익과 국가 전체의 이익을 다루는 자리이다. 도덕은 선과 악, 미학은 아름다움과 추함, 경제는 이익과 손실로 명확히 구분할 줄 안다.
하지만 한국의 공직자들은 자신의 이해가 걸려 있을 때는 이 구분이 명쾌하지 않다. 공직자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이유는 권력에 기생하며 사사로이 돈벌이 수단으로 공직을 이용한데 기인한다. 사회의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권력을 가진 공직자부터 청렴결백해야 한다.
더불어 민주당은 정치개혁을 필두로 검찰개혁·사법개혁·언론개혁 뿐만 아니라, 특히 민생 법안에 강력한 드라 이브를 걸어야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뒤로하고 볼썽 사나운 권력투쟁을 벌인다면 다가 올 대선도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의 파이에 안주하지 말고 다가 올 파이에 주목하라.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개혁은 타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권리를 자신에 달라는 이율배반 행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레임덕이 가속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상대의 헛발질로 어부지리 승리를 거머쥔 국민의힘당도 지금의 의석수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열쇠는 이미 지난 총선에서 주어졌다. 1년동안 불통의 자물쇠를 철저한 준비없이 어설피 건들다 시간만 낭비하며 부동산 폭등을 불러왔다. 더 이상은 못 살겠다고 집토끼가 도망쳐 버렸다. 서울·부산 선거구의 41:0의 참혹한 결과는 174석의 더불어민주당이 가야할 길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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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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