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증오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 충격적인 것은 LA에서 태어난 스노보드 선수 클로이 김(21)의 고백이었다. 클로이 김이 누군가. 경기 후면 늘 활짝 웃음을 짓던 ‘미국 소녀’, 스노보드 세계 최강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런 그도 “인종차별에서 면제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 외출 때마다 페퍼 스프레이 같은 호신용품을 갖고 다닌다고 밝혔다.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외설스러운 욕설을 듣는가 하면, 침을 뱉는 이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를 올해의 여자선수로 선정했던 ESPN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들이다. ‘부끄러운 미국’의 단면을 보게 된다.
워싱턴DC 여행 길에 의사당을 투어하면 연방의회의 의미가 한층 무겁게 실감된다. 미국의 건국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가 연방의원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한인2세 앤디 김 연방의원이 팬데믹 후 당했다는 봉변을 들으면 이런 연방의원도 아시안 혐오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미셸 박 스틸 연방의원도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장 시절, 그가 겪은 인종차별 경험을 전했다. 카운티 정부기관 곳곳에 초상화가 걸려 있는 카운티 최고위 공직자도 아시안 차별은 비껴가지 못했다.
아시안 판 ‘미투’가 이어지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 범람이 가져온 성과 중의 하나라고 본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쉽게 털어놓기 힘들었을 “나도 당했다” 사례들이다. 이들의 ‘커밍 아웃’은 아시안 이민자나 후손은 누구도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숨겨진 차별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각나는 것은 얼마 전 벌어진 애틀란타 참극이다. 알려진 대로 이 총격으로 한인등 아시안 6명을 포함해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아시안이라는 특정 인종을 노린 증오범죄인가. 워싱턴 포스트지와 지역 유력지인 애틀란타 저널 컨스티튜션(AJC) 보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보도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 21세 용의자 롱은 섹스 중독 때문에 재활 시설에 입주해 있었다. 각종 중독자에게 12단계의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롱의 빈번한 마사지 업소 출입은 부모도 알고 있던 문제였다. 이 때문에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룸메이트에 따르면 롱은 마사지 업소를 다녀온 뒤 후회하며 자신을 저주하는 듯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워싱턴 포스트
“… 롱은 (마사지 업소 출입을) 저항할 수 없는 초청이라고 주장했다. 업소 안에서 어떤 서비스들이 제안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지아 주는 지난 수 십년간 성적으로 자극하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불법 마사지 업소 단속에 실패했다. 피살된 종업원중에는 업소 관리와 직원 식사를 담당하던 사람도 있었고, 10여년 전 매춘혐의로 기소된 사람도 있었다…”- AJC
지역 매체인 AJC는 마사지 업소를 이용했던 고객들의 댓글을 분석해 업계 실태를 전했다. 동시에 조심스럽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이 사건의 동기 규명에 접근했다. 신문은 많은 마사지 업소는 불법 영업과 관련이 없으며, 자칫 업계 종사자가 받을 수도 있는 오해를 경계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아시안 증오,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조사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애틀란타 참극의 동기는 사법기관의 최종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사건이 반드시 아시안 증오범죄여야 하거나, 주장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숨진 이들은 아시안 증오범죄의 실상을 파헤치는 제단에 바쳐진 희생 제물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사회는 아시안 증오의 실태와 심각성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아시안들은 연대했고, 연방정부 기관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반기가 게양됐다. 아시안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졌다.
엽기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아시안 혐오 사례는 많다. 뉴욕의 지하철에서는 20대 아시안 여성 앞에서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누는 일도 있었다.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용의자는 60대 백인 남성이었다.
지난 달 한 아시안 권익단체 조사에 의하면 아시안 주민 10명중 7명이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차별, 괴롭힘, 증오범죄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타인종이 경험했다는 것보다 20% 가까이 더 많다. 여기서 나서 자라고, 공부도 할 만큼 한 우리 자녀들, 좋은 직장과 전문직에 진출한 한인 2세들도 말을 안 해 그렇지 왜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 자존심 상하고, 말해 봐야 부모 속만 상하게 할 뿐이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스포츠계의 아이돌, 미국 국회의원도 당하는 판에.
억울해도 참고 넘어 가는 것은 미국서는 전혀 미덕이 아니다.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야 할 2세들을 위해서라도 이 기회에 아시안은 침묵하는 모범 소수계가 아니라, 분노하고 항의하고 행동하는 ‘강인한 소수계’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물밑에서 벌어졌던 아시안 차별이 공론화되려면 먼저 경험의 공유부터 이뤄져야 한다. 아시안이어서 당했던 말 못했던 사례를 모아 책으로 낸다면 전집으로 엮어도 될 분량이 쏟아질 것이다. 아시안 ‘미투’는 이제 시작이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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