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동안 인간은 잡식동물이라 배우고 그렇게 믿어왔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골고루 먹는 생활 습관이 가장 건강하다는 상식을 별로 의심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최근에 이 오래된 믿음(?)을 깨트리는 파격적인 주장들이 연달아 등장하고 있다.
채식을 하면 더 건강해질까? 육식을 덜 하면 건강해질까?
어떤 이들은 한국인들이 자주 먹는 쌀밥이나 국수에 주로 들어있는 탄수화물이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탄수화물 섭취를 대폭 줄이고 대신 지방이나 단백질이 우리의 주식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황제다이어트 ‘엣킨스’나 고지저탄 ‘케토지닉’ 같은 식단이 여기 속한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고기와 같은 육식을 즐기는 식습관이 만병의 근원이 되니 식단에서 육류를 제하고 철저하게 과일과 각종 곡물, 그리고 채소위주의 식단을 지킬 것을 권하는 채식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오히려 동물성 식품의 섭취를 제한하기만 하면, 식단에서 탄수화물이 섭취하는 비율이 높아지더라도 건강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환경호르몬과 항생제, 농약 같은 화학약품에 오염된 것이 큰 원인이니 항상 유기농 식품 같은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한다.
문제는, 이 모든 주장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가지 과학적인 근거를 내세우고 있어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어느 쪽의 주장이 그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육식에 기반한 식단을 테스트한 논문에서도, 채식에 기반한 식단을 테스트한 논문에서도 똑같이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지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걸까?
육식을 해도 채식을 해도 죽는 이유만 달라질 뿐, 평균 수명과 사망률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건강한 식단을 찾기 위해 행해지는 여러 실험들과 연구에서 음식을 섭취하는 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간과한 채, 대부분의 연구가 음식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사람은 인종에 따라, 자라온 환경에 따라, 혹은 체질에 따라 몸의 구조가 모두 다르기에 그에 맞춰 몸에 좋은 식단도 서로 달라지는 것이 정상이다.
최근 몇 년사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채식과 육식에 대한 논의가 좋은 예다. 최근 네덜란드에서 5만명의 엄격한 채식주의자들(비건)에 대한 대규모 스터디를 실시했는데, 이 연구팀은 채식이 심장병과 암의 위험도를 확실하게 낮춰 주는 것은 확인하였지만, 다른 여러 요인까지 모두 감안했을 때 최종적으로 나타난 사망률의 수치에서는 어떤 차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특별한 질병을 기준으로 놓고 비교하면 채식이 건강한 삶과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채식이 ‘장수’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작년 옥스퍼드대에서 엄격한 채식주의 식습관을 가진 이들 4만8000여명의 영국인들을 지난 18여년간 조사한 결과(평균 연령 45세), 육류를 섭취하는 집단에 비교해 채식주의자는 심장 관련 질환 발생율이 22% 가까이 낮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또한 전반적으로 낮은 상태를 유지하였음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뇌졸중 위험도는 육식을 즐겨하는 집단보다 오히려 20%이상 높아짐을 발견하였는데, 그 결과 같은 기간동안 육식과 채식을 즐기는 그룹사이의 사망률은 거의 동일했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그 자체로 좋은 식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식단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니 육식이 좋으니 채식이 좋으니 라는 논쟁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바로 나의 유전적, 체질적, 혹은 인종적 조건들이 어떤 질병에 더 취약한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어떤 식단이 내가 가진 체질적 약점을 의학적으로 잘 보안해 줄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나에게 맞는 식단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 내 가족 중 유난히 암이나 심장에 관련한 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면, 그러한 병들의 유병률을 떨어뜨려 주는 채식을 선택하면 질병 없는 삶과 장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 중 유난히 뇌졸중을 앓는 이가 많은 어떤 이가 채식을 선택한다면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된다. 좋은 식단보다 내 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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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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