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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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의 약력
△1732 2월 22일 버지니아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 출생 △1749 측량기사 △1752 버지니아 민병대 장교 △1755 버지니아 민병대 사령관 △1759-74 버지니아 하원의원 △1774-75 대륙의회 대의원 △1775-83 대륙군 총사령관 △1787 제헌회의 의장 △1789-97 합중국 대통령 △1799 12월 14일 버지니아 마운트 버논에서 영면
“전쟁에서 최초, 평화에서 최초, 그리고 그의 백성의 마음에서도 최초.” 워싱턴에 대한 헨리 리의 평가이다.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서열 1위의 지도자이다. 그는 오합지졸의 군대를 이끌어 승리를 쟁취했다. 또한 제헌회의를 주도했으며 13개 주의 대표들을 하나의 헌법 아래로 단합시켰다. 그리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한 번도 실행된 바 없는 헌법을 ‘작동하는 정부’라는 현실로 펼쳐냈다.
유년시절부터 워싱턴은 강하고 용맹하고 독립적이었다. 16세에 그는 서부의 황무지를 탐사했다. 22세에 그는 작은 민병대를 이끌다가 막강한 프랑스군에 패배했다. 브래독 장군의 부관이었던 23세에는 프랑스의 매복공격으로 브래독의 부대가 패퇴할 때 포화 속에서 용기와 담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버지니아의 민병대 사령관으로서 최전선에서 프랑스와 인디언과 싸웠다.
워싱턴은 1774년 버지니아 애국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천 명의 남자를 모집하여 내 돈으로 부양하며 그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 보스턴을 구하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대신 그는 제 1차 대륙회의에 천거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대륙회의는 만장일치로 그를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선출했다.
워싱턴은 막강한 영국군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군대를 훈련시켰다. 그는 기습공격으로 이따금 승전을 거두었으나 필라델피아와 만모스의 중요한 전투에서 패배했다. 부족한 보급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지원할 때까지 군대를 유지하여 고통스런 여러 해를 버텨냈다. 그리고 프랑스(아메리카의 연합군을 이끌고 자신의 가장 위대한 승리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요크타운에서 콘월리스 장군과 7000명의 대영제국 정규군의 항복을 받아냈던 것이다.
승리를 거둔 장군에게 왕조를 세우자는 제안들이 있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총사령관직을 사직하고 미련 없이 마운트 버논으로 귀향했다. 그러나 연합회의 체제의 비효율성을 절감했고 다른 형태의 정부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전국의 지도자들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제헌회의를 기꺼이 맞이했고, 이 회의의 의장으로서 전쟁 영웅의 위상을 회의장에서도 발휘했다. 그는 여러 논쟁 속에서 조정역을 자임했다. 최종안에 서명된 그의 이름은 헌법이 비준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대통령 워싱턴’은 만인의 선택이었다. 그는 제퍼슨과 해밀턴을 함께 입각시켰고, 그의 꾸준한 노력으로 신생정부는 이 두 정당 지도자들의 갈등에도 성장할 수 있었다. 8년에 걸쳐 그는 새로운 공화국의 각 부처를 창설하고 새로운 전통을 세운 후 세 번째 임기는 사양했다. 내성적이고 근엄한 성격이었지만 워싱턴은 헌법상의 대통령직의 핵심을 구현하며 (승전한 장군으로서 권력을 초개처럼 버렸듯이) 대통령의 권한을 단호하게 이양했다. 이것은 또 다른 ‘최초’였고 그의 계승자들이 거부할 수 없는 모범을 확립했다. 그는 국가를 위한 위대한 봉사를 마치고 전 세계 위대한 영웅들의 대열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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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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