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65세이상 연장자는 물론 직종, 거주지역, 기저질환 등에 따라 이미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5월까지 모든 성인의 접종 허용과 7월4일 독립기념일에는 뒷마당 바비큐 파티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니 백신 접종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
백신을 맞으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할까. 접종 완료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미뤄 왔던 일이 얼마나 많고,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중의 하나는 의사 예약을 잡는 것이다. 이제 의사 오피스에 갈 때가 됐다.
지난 1년 동안 예정됐던 진료와 정기검진, 치과 치료 등을 한 번도 미루지 않았다면 상당히 예외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버드 공공보건대학 등이 LA, 뉴욕 등 주요 대도시 몇 곳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팬데믹 동안 5가정 중 한 가정에서는 정상적인 진료를 받지 못한 가족이 있다고 한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팬데믹 초기에는 무슨 연유에선지 의사 예약을 잡기가 힘들었다. 예약이 밀려 그랬을 수도 있다. 미열만 있어도 신경이 쓰이던 때였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오면 덜컥 겁이 났다. 지난해 3월 워싱턴DC에서 LA로 이사 온 한 20대 여성은 몸에 이상을 느껴 보험 네트웍에 들어있는 의사 12명에게 전화했으나 예약을 할 수 없었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지금은 예약이 안돼요”라는 답변만 듣기도 했다. 겨우 어전트 케어를 찾아 가 중증 기관지염 진단을 받았다. 치료 시기를 놓쳐 석달을 고생했다.
그 후에는 오히려 환자들이 병원을 피했다. 감염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괜히 병원에 갔다가 없던 병도 옮기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컸다.
LA의 한 응급실 의사는 “평소 응급실에 오는 환자 중 진짜 응급은 열에 한 명 정도”라고 전한다. 4명은 긴가민가해서 오고, 나머지 5명은 응급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덮치자 이런 환자들이 싹 빠졌다. 불필요한 진료의 거품이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시기를 놓쳐 병세가 악화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벌어졌다.
가슴 통증을 3~4일이나 참다가 온 심장마비 환자도 있었다. 며칠 뇌졸증 증상이 계속됐으나 신체 일부에 마비가 온 다음에야 병원을 찾기도 했다. 고혈당으로 상태가 악화돼 가족들이 앰뷸런스를 불렀으나 환자 자신이 되돌려 보낸 뒤 위중해진 다음에야 실려온 케이스도 있었다. 과장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하버 UCLA 병원 등의 응급실 의사들이 전하는 실제 사례들이다.
LA카운티 검시국은 팬데믹 후 집에서 숨진 사람의 숫자가 훨씬 늘었다고 한다. 코로나 사망자도 있을 수 있지만 적정 치료나 응급 타이밍을 놓친 것이 원인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성병 검사 등은 뒤로 미뤄졌다. 치과, 안과, 정신과 등도 마찬가지다. 좀 불편해도 참고 지나갔다. 그래도 큰 문제없는 경우도 있으나 췌장암, 방광암 등은 한달 차이로 치료효과가 극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국립 암 연구소는 팬데믹 기간에 급감한 마모그램과 대장경 검사 현황을 보면 앞으로 2년 내 유방암과 대장암으로 숨지는 미국인이 보통 때보다 1만명 정도 더 늘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적정 치료를 놓쳐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경우도 있다. LA 북쪽 노스리지의 12살 뇌성마비 소년이 그런 케이스. 이 소년은 정기적으로 보톡스 주사를 맞아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 왔으나 응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상태가 나빠졌다. 정기적인 치료를 받을 때는 스스로 신발도 신고, 보행기에 의지해 걷기도 했지만 지금은 휠체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자가 줄어 오전이나 일부 요일만 진료하는 개업의도 있고, 불 꺼진 치과도 있다. 팬데믹 초기부터 일반 환자가 줄면서 운영난을 겪는 병원도 있다. 특히 외곽지역의 소형 병원들이 심각하다. 환자가 몰릴 때는 너무 몰리고, 없을 때는 텅텅 비는 코로나 시대의 밀물과 썰물 현상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다.
미국에서 매년 심장 질환으로 숨지는 사람은 65만5,000명이 넘는다. 이번 코로나 사망자 보다 더 많다. 가슴이 불편하거나, 호흡이 가쁘면 의사에게 가야 한다. 미 당뇨협회는 당뇨 환자의 43%가 팬데믹으로 정기 검진을 늦췄다고 보고 있다. 당뇨 합병증이 무서운가, 코로나가 무서운가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기검진과 검사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국립 암 연구소 등 공신력 있는 의료기관에서 잇달아 나오고 있다. 특히 관리해야 하는 기저질환이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들은 미뤄 놨던 숙제를 챙겨야 한다. 시간이 지나 검사 신청이 한꺼번에 몰리면 병목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백신 접종을 한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미뤄왔던 의사 예약도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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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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