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을 마친 후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악명 높은 이민정책을 연이어 거둬들였다. 그 중에는 바이든이 “미국의 양심에 찍힌 오점”이라 평했던 ‘무슬림 입국금지’ 명령도 포함됐다. 그날 하루 동안 바이든이 서명한 6건의 행정명령은 미국에 들어와 일하는 1,000만 명의 불법체류자들에게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등 보다 인도적이고 포괄적인 이민개혁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야심만만한 사전포석이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는 관광객에서 이민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외국인들의 입국과 체류를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트럼프가 여기저기 끼워 넣은 수백 건의 룰과 규정 및 수수료를 폐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활기찬 노력은 미국 남쪽 국경에 새로운 이민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전임 대통령의 정책 탓에 방해를 받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수십만 명의 중앙아메리카인들은 난민신청을 위해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로 몰려들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부모로부터 어린 자녀들을 강제로 떼어내 열악한 수용시설에 감금하는 잔인한 방식으로 맞섰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남쪽 국경에서 난민신청을 받아 직접 처리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일단 신청서를 제출한 난민들은 자격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멕시코 지역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또한 관련국과의 합의에 따라 이들이 미국이 아닌 출신지의 접경국에 난민신청을 하도록 되돌려 보내는 방안도 마련했다.
그러나 바이든이 이같은 정책을 번복하자 이전의 트럼프 정부에 비해 훨씬 너그러운 이민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미국의 남부 국경으로 향하는 중앙아메리카인들의 대열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미국 남부국경에 도착했거나 불법 월경을 시도한 중앙아메리카인들은 대략 18만 명으로 2020년의 첫 두 달에 비해 거의 두 배나 증가했다. 날씨가 따듯해지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취임이후 멕시코 접경지의 일선 관리들은 구름처럼 밀려드는 난민신청자들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건강문제를 이유로 아동 이주희망자들의 입국을 막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예외규정을 두도록 한 바이든의 결정 탓에 부모 없이 국경에 도착하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연방당국은 아직도 국경근처에 머물고 있는 3,500명의 미성년자들을 수용할만한 시설을 찾기 위해 비행장과 군 기지를 물색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미국의 난민시스템은 통제 불능상태다. 난민의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종교적, 인종적, 혹은 정치적 핍박이 두려워 해외로 피신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의 입국경로를 열어놓았다. 1930년대 유대인들을 거부했던 흑역사를 감안하면 대단히 고귀한 발상이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경로를 통한 입국은 극단적인 차별사례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그러나 남부 국경을 통해 들어오려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빈곤과 폭력을 피해 고국을 등진 전통적인 이주자들(migrants)이다.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타지역 출신자들에 비해 이들을 특별히 대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트럼프는 일찌감치 피 냄새를 맡았다. 불법이민에 대한 두려움을 최대한 활용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바 있는 트럼프는 남쪽 국경 상황을 문제 삼아 바이든에게 무차별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달 국내 최대 보수단체 ACU가 주최한 미국보수정치행동회의총회(CPAC)에 참석, “바이든이 우리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불법이민의 홍수를 촉발시켰다”고 비난했다. 이어 지난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그들 중 상당수는 범죄자와 코비드 보균자”라는 근거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비극적인 사실은 이번 국경위기와 이를 둘러싼 트럼프의 정치선동이 이민시스템의 총체적 개혁을 달성하려는 바이든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난민신청자들은 전체 이민자들 가운데 소수집단에 속한다. 이민신청자들 중에는 가족상봉을 위해 들어오려는 사람들, 혹은 미국이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을 지닌 숙련 노동자 등 난민신청자들보다 훨씬 규모가 큰 그룹이 포함되어 있다.
트럼프의 정책 덕분에 이민자들, 혹은 이민신청자들은 미국이 이민쿼터를 폐기한 1965년 이래 가장 적대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수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에 팬데믹으로 인한 이동제한까지 얹어지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수는 40년래 최저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세계 최고의 두뇌와 기술을 지닌 이주희망자들 가운데 일부는 캐나다에서 호주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비해 이민자들에게 훨씬 호의적인 국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센서스자료는 이민이 끊길 경우, 미국이 심각한 인구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체 인구,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층에 속한 인구가 감소하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가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개개인의 기회가 축소될 것이라는 심각한 경고다.
진정한 이민 위기는 현재 남쪽 국경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아니다. 센서스자료가 경고하는 인구감소야말로 국가의 미래가 걸린 심각한 이민위기다.
<
파리드 자카리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미래엔 각국의 국력이 바로 인구수에 따라 결정될것 현재 한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국가에선 인구감소로 인한 국력쇠퇴를 걱정하며 인구증가를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오직 순간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여 무지몽매한 자들을 현혹하여 인종차별을 실시한 트럼프 와 그추종자들 한치앞도 보지못하는 인간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코로나에 난민에 이주자 불법체류자들...이들도 사람이고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것만 각자가 처한 여건들이 나라들이 이들을 이들이 원하는걸 다 안겨줄수없다는게 안타 까울뿐이군요...오 하늘이시여 이들에게 따뜻하게 먹고 마실물과빵을 거처를 옷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