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원죄이자 수치로 기록될 40년 전 5.18 광주의 진정한 비극은 고립과 방관에 있었다.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군부 독재 퇴진을 요구하며 자국 군대의 총칼에 죽어갈 때 광주는 외딴 섬 마냥 철저하게 고립돼있었다. 세계는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던 참극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수년 후 대학에 들어가서야 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철저하게 고립되고 방관당했던 1980년 5월 광주에 뜨거운 연대를 보내준 사건이 LA 한인사회에서 벌어졌다는 역사를 아는 한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1980년 5월24일 LA 한인타운 아드모어 공원(현 서울국제공원)에는 수백여명의 한인들이 토해내는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편적이나마 전해지고 있던 광주의 참혹한 학살극 소식 때문이었다. 아드모어 공원에 나온 한인들은 죽어가고 있는 광주 시민들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바로 LA 적십자사를 점거해 미국 정부를 움직여야한다는 것이었다.
광주에서 죽어가는 부상당한 시민들을 위해 한인들이 헌혈한 피를 광주로 보내줄 것을 미국 적십자사에 요구하는 소위 ‘혈액 압박’(Blood Push) LA 적십자사 점거농성이 그렇게 시작됐다. 200명 이상의 한인들이 여기에 동참했고, 이제는 70대가 다 된 당시 한인 대학생들이 동참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중장년층이 가세해 농성 참가자는 400명까지 불어났다. 계엄 치하에 있던 한국의 가족 때문에 두려워한 한인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농성장을 지켰다. 이들은 수혈할 혈액과 식량이 부족한 광주에 한인들이 헌혈한 피를 보낼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하며 72시간 동안 LA 적십자사 혈액원을 점거한 채 농성을 이어갔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과 연방 의원들에게도 광주의 비극을 중단시켜줄 것을 호소하는 청원 운동도 함께 펼쳐졌다.
하지만 이 점거 농성은 성공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한국 적십자사가 혈액이 필요치 않다며 거부했고, 5월27일 계엄군이 도청을 무력 진압해 5.18 광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적십자사를 점거 중이던 미주한인들도 결국 경찰에 의해 끌려나오면서 울분에 찼던 농성도 그렇게 실패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점거농성를 주도했던 양현승은 훗날 “죽어가던 광주 시민들을 구하려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분명한 실패한 것이지만 LA 한인사회가 고립된 광주에 뜨거운 연대감을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성공한 운동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미얀마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의 저항과 군부 훈타 세력의 학살극이 1980년 5월 광주의 데자뷰를 보듯 겹쳐 보인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영국의 식민 지배에 이어 수십년에 걸친 군부독재, 그리고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좌절, 포기하지 않는 저항의 역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닮아있다.
1988년 8월8일 미얀마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민주화 투쟁으로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내고 끝내 민주정부를 수립했지만 또 다시 훈타 세력의 총칼에 피 흘리고 있는 미얀마가 수십년전 한국의 과거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아 더더욱 가슴 아프다.
지난달 28일 18명이 군경의 총격으로 사망한 ‘피의 일요일’에 이어 지난 3일에는 군경의 무차별 총격으로 하루에 38명이 사망해 희생자가 60명에 육박하고 있는 미얀마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다.
고립되고 차단됐던 80년 5월 광주와 달리 다행히 미얀마 시민들은 현재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을 전하며 전세계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고, 수많은 세계인들이 미얀마에 연대를 표시하며 국제기구와 국가들에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의 행동은 여전히 더디고, 미얀마에 영향력을 가진 중국은 미온적이며, 미국의 대응은 말잔치일 뿐이다.
유엔은 5일 긴급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미얀마 사태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다고 한다. 죽어가고 있는 미얀마 국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행동을 서둘러야 한다. 80년 5월 광주를 기억하는 LA 한인사회도 연대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뜨거운 가슴으로 행동에 나서야할 때,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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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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