盡日尋春不得春[진일심춘부득춘] : 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은 만나지 못하여
芒鞋踏遍농頭雲[망혜답편농두운] : 짚신 신고 산 머리 구름까지 두루 살폈네.
歸來笑拈梅花臭[귀래소염매화취] : 돌아오며 웃음띠고 매화꽃 잡아 냄새 맡으니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 매화 가지끝에 이미 봄이 가득하구나
송나라 시대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비구니 ‘송모여승(宋某女僧)’의 오도송(悟道頌: 불가의 스님이 깨닮음을 얻고 지은 시)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연하면, 봄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은 조급한 마음에 하루종일 이곳 저곳 돌아보며 봄의 징조를 찾아보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늦추위 뿐 그 기미를 찾을 수 없다. 짚신을 신은 채로 구름 낀 높은 산마루까지도 걸어가 본다.
그러나 산골짝에는 잔설(殘雪)이나 보일 뿐 봄 기운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지친 다리를 끌고 집(혹은 절)에 돌아와 보니 문득 매화 향이 전해온다. 기쁜 마음에 웃으면서 그 향내를 따라가 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봄은 바로 집뜰 안의 매화 나무 끝에 벌써 와 있지 않는가.
파랑새를 찾아 다녔건만 찾지 못하고 돌아와 보니 집안에 기르던 새가 파랑새라는 우화를 떠올리게 된다.
추구하는 대상에 따라 깨달음 혹은 행복, 소중한 가치는 밖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바로 곁에 내 자신에 있다는 진리 같다.
모처럼 온종일 작렬했던 봄의 태양이 녹두알 굴러가듯 서산 아래로 내려간다. 힘들게 일 하는 하루는 길고, 흘러간 일년은 짧다. 젊음은 시속(時速; miles per hour)이지만, 노년은 초광속(超光速; faster-than-light)이다.
인생은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니다. 쉼표나 마침표도 아니다. 인생은 하나의 점(點)에 불과하다. 순간이며, 찰나다. 따스한 봄날 무슨 일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어떻게 하루를 보낼 것인가에 골몰한다.
가을에 수확하여 건조대에 걸어 둔 시래기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완전 건조될 때면 봄이 찾아 온다. 집 뜰의 매실나무는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혔지만, 눈 추위로 열흘 정도 멈추다가 따스한 봄 햇빛이 내리쬐자 하나 둘 꽃망울을 벌여 꽃을 피우고 있다. 모진 추위를 이기고 봄의 전령사 매화가 피기 시작했으니 어느새 계절은 봄이다. 자연의 섭리는 역시 위대하다.
매실꽃을 보니 농사꾼의 마음이 바빠진다. 입시 치러 가는 수험생 마음 같다. 작년 뜻하지 않는 코로나19 덕분으로 집 주위에 큼직한 텃밭을 일구웠다. 싱싱한 유기농 텃밭을 만들기 위해 퇴비거름(Mulch)도 충분히 깔아야 한다. 뿌리가 잘 자라도록 거름 흙갈이 객토도 하고 정원용 새흙(Garden Soil)도 계분비료와 섞어 두툼하게 부어야 한다. 농사꾼의 봄기운은 텃밭에서 먼저 온다. 봄나들이 떠나는 대신 텃밭에서 이른 봄 정취를 만끽해야 한다.
조만간 날씨가 더 풀리기 전에 겨울에 인터넷에서 구입한 한국 풋고추, 깻잎, 오이, 호박, 실란초, 도라지, 상추, 적상추, 쑥갓, 부추, 파, 마늘, 미나리, 토마토, 등등 파종 시기와 모종 방법도 공부해야 한다.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카네이션, 해바라기, 양귀비 등등 옛 고향 생각나는 꽃씨도 정리, 뿌릴 준비를 해야 한다.
나무상자텃밭(Raised Wooden Bed)도 제작하고, 큼직한 플라스틱 화분도 몇 개 준비해야 한다. 농기구도 때빼고 광내야 한다. 농부는 맘도, 몸도 바쁘고 바쁘다.
유기농 농사를 짓기 위하여 천연유기물로 영양분을 보충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려고 퇴비통(Compost Bin)도 만들었다. 지난 가을 낙엽을 모아 가득 넣어 발효중인 퇴비거름 냄새가 제법 코를 찌른다.
빗물은 질소 성분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일반 수돗물보다 식물을 더 튼튼하고 빨리 자라게 한다고 해서 지붕 물받이와 연결하여 새로 설치한 빗물통(Rain Barrel)에는 식물의 생명수인 빗물이 가득차서 넘쳐 흐르고 있다.
봄에는 씨 뿌리고 물주고, 여름에는 모기 물려가며 뙤약볕에 풀 뽑고 정성스럽게 잘 키워, 가을에는 검게 탄 얼굴로 풍성한 수확을 하여 지인들과 함께 나눠 먹는 기분 또한 기쁘고 즐겁지 않겠는가. 코로나-19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농부의 행복 바이러스 아니겠는가. 농사꾼의 마음은 설레고 벌써 가을이 된 기분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로다!
<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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