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0월 하버드 대학 스티븐 엘럿지 교수는 코로나19로 사망한 미국인들이 더 살 수 있었음에도 잃어버린 수명이 무려 250만 년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수치는 당시 22만 명 사망자들의 연령분포와 기대수명 사이의 차이를 취합한 것이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지난주 50만 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들의 연령 분포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면 50만 명이 잃어버린 잠재적 수명은 거의 570만 년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긴 시간이다. 이 천문학적 수치의 시간이 코로나19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엘렛지 교수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이렇게 상기시킨다. “1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떠올려 보라. 부모와 배우자, 자녀들, 그리고 친한 친구와 1년을 더 보낼 수만 있다면 어느 누가 그 무엇인들 주지 않겠는가?”
그의 지적처럼 코로나19 희생자들이 더 누릴 수 있었을 삶의 하루하루 그리고 1년1년은 수많은 경험들과 추억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으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바꾸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들을 코로나19는 가차 없이 앗아갔다.
특히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년층의 희생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머지않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해야 할 순간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코로나19는 이들에게 그 짧은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TV 전파를 타고 있는 한 공익광고가 가슴을 강하게 후려친다.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사진이 뜨면서 딸의 흐느낌이 이어진다. 딸은 사랑하는 엄마를 안아 줄 수도, 작별 인사를 나눌 수도 없었다며 무기력하고 처절했던 이별의 고통을 호소한다. 이런 고통을 막고 줄여주려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공익광고의 메시지이다. .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천문학적 수치의 시간 전부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보고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단 몇 십분, 아니 몇 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초현실적이다. 그래서 그저 두려운 수치와 통계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희생자들과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삶의 마지막 몇 분은 아주 구체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
어머니가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 연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낙상사고로 거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신지 딱 1년 만에 자식들 곁을 떠나신 것이다. 지난해 2월 영국에 갈 일이 있어 떠나기 전 찾아뵙고 보름 뒤 보자고 했던 것이 마지막이 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면회가 금지되는 바람에 돌아가실 때까지 10개월 동안 직접 얼굴을 뵙지 못했다. 상황이 진정되고 다시 방문이 가능해지면 손을 어루만지고 볼을 비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버텼지만 헛된 소망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로 돌아가신 것은 아니지만 팬데믹이 초래하고 있는 가족 비극의 일면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셈이다. 코로나19 희생자 가족들이 겪고 있을 고통과 슬픔에 좀 더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후회는 어떤 일이 일어난 후 갖게 되는 사후적인 감정이다. 후회의 감정은 더 좋았을 대안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생긴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같은 가정문이 붙는 감정인 것이다.
세상에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죽음 뒤에 따르는 회한이 바로 그렇다. 망자와의 관계는 다시 회복할 수도 치유할 수도 없다. 이런 회한은 빼내기 힘든 가시처럼 아주 오랫동안 우리 가슴 속에 박힌 채 남아 있게 된다.
다행인 것은 후회가 항상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후회를 통해 잘못과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 후회한다는 것 자체가 달라지고 싶다는 욕구의 발현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른 사후적(事後的) 혹은 사후적(死後的) 후회와 회한을 최소화하려면 현재에 더욱 집중하고 충실해야 한다. 새털처럼 많은 날들이라며 그냥 무심히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이 그 누군가에게는 다시 되돌리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회한의 순간이라는 것을 팬데믹의 비극은 깨우쳐 주고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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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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