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대화할 때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혹시 히브리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은 아람어였다. 멜 깁슨이 감독했고 철저한 고증으로 유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에서 사용된 언어가 아람어이다.
유대민족은 기원전 6세기까지는 히브리어를 국어로 사용하였지만 그 후에 아람어가 공용어가 되어 일상생활에서는 아람어를 사용했다. 이런 국어의 전환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유대민족이 바벨론으로 강제로 유배되어 오랫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이런 유대민족의 언어전환에 세 가지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포로생활이 너무 길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두 세대가 넘는 기간 (기원전 605년에서 기원전 538년: 68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히브리어를 기억했던 1세대들이 거의 사라지고 바벨론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사실 우리 민족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일제는 1938년 제3차 교육령으로 그 전에는 필수과목이었던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전환한데 이어 1943년 제4차 교육령으로 조선어를 폐지하고, 학교에서 국어(일본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일제시대가 35년으로 마감되어서 다행이지 유대민족처럼 70년으로 이어졌다면 아마도 한글은 언어학자나 역사학자의 전문영역에서 사용되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본어를 쓰게 되었을 것이다.
둘째, 바벨론의 문화에 동화되었다. 이민을 연구한 사회학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민간 나라의 문화가 우월하면 본국의 문화를 잊는 경향이 있고 반면에 본국의 문화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본국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 1960년대나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의 자녀는 많은 경우 한국보다 미국 문화에 익숙해져서 우리의 문화를 열등하게 느끼게 되고 한글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배울 기회를 놓치고 나이 들어 배우고 싶어 하지만 한국어를 못하거나 어눌하게 된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조국의 문화와 경제가 차원이 다르게 발전한 지금에 이르러 한국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이제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류에 관심을 보이고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려고 학교에서 수강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도 있는 것을 보며 우리의 자녀들이 모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이는 자연스럽게 한국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열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 유대 민족의 단체나 교육 시설이 드물었다. 포로로 잡혀 가서 노예생활을 했기 때문에 같이 히브리어를 가르치거나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고 학교는 더욱 없었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만약 우리의 한국학교가 없었으면 우리의 2세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유대인 사회를 부러워하지만 한편으로 유대인들은 거의 모든 모임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한국어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유럽의 열강들이 대항해시대 이후 아프리카, 중남미의 나라들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수백 년을 지배하고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심었다. 20세기 들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독립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영국어를 쓰고 있다. 그 나라들을 방문해 보면 문화나 정치구조도 식민국의 문화와 비슷한 점을 느낄 수 있다. 말과 글이 독립되어 있지 않으면 아직도 식민통치에서 완전히 독립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모든 면에서 일본에게 뒤지는 것을 치욕스럽게 여긴다. 이는 우리의 전통 문화가 일본보다 앞서고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긍지 그리고 독립운동에 매진하신 애국자들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시대에 한글을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치신 외솔 최현배 선생은 ‘말과 글은 우리의 얼’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한국어와 한글을 차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은 한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을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삼일절을 맞아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까지 않았던 우리의 선배를 기억하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의 말과 글을 우리의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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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 재미한국학교 워싱턴 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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