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워싱턴 D.C 지역에는 눈이 별로 안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눈 내리는 것을 보니 반갑다. 기왕이면 한 번 길이 꽉 막힐 정도로 내려주어도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까지 한다.
미국에 살면서 폭설도 여러 번 경험했다. 가장 잊지 못할 경험은 1983년에 있었다. 당시 나는 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구정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 3시간 거리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가기로 했다. 금요일 수업이 오전 11시에 끝나는 대로 바로 출발했다. 점심식사는 집에 가서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학부생 여자 후배 한 명이 라이드를 부탁했다. 이전에도 가끔 라이드를 주었었다. 집이 하이웨이에서 가까이 위치해 많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윌리암스버그를 떠나 리치몬드 조금 지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에 일기 예보를 확인 안했다. 눈발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러더니 프레드릭스버그 쯤에 다다르자 정체된 트래픽으로 길이 막혀버렸다. 한 곳에서 2시간 이상 서있기도 했다. 배가 고파왔다. 차 안에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하이웨이를 벗어나 음식을 사먹으러 갈 수도 없었다.
언제까지 그 상황이 계속될지 몰라서 개스를 아끼느라 엔진을 껐다. 차 안의 온도가 내려갔다.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야 다시 엔진을 켰다. 내리는 눈이 차 앞 유리에 쌓이기 시작했다. 와이퍼가 얼어붙어 차에서 내려 손으로 눈을 치워야했다. 그런데 눈에 빠지니 신발과 양말이 차갑게 젖다가 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발도 얼어 도저히 다시 나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체면을 무릅쓰고 후배에게 대신 나가서 치워달라고 했다.
하이웨이를 빠져 나가는 길이 보이자 로컬 길인 1번 도로로 나갔다. 그런데 막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우기 언덕을 만날 때마다 겨우 한 대씩만 갈 수 있었다. 뒤로 다시 미끄러져 내려오거나 길옆으로 빠지는 차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면 언덕 아래에서 기다리던 차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 함께 힘을 합쳐 그 차들을 밀어 올리든지 구덩이에서 빼내곤 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이미 저녁식사 시간도 지나갔다. 춥고 지친 몸은 배고픔을 아예 느끼지 못했다.
도저히 후배를 집까지 데려다 줄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께 전화해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 여쭤보라고 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후배는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얼마 후 돌아 온 후배의 얼굴은 눈물 투성이였다. 이런 날 집에 온다고 야단을 맞았다고 했다. 도저히 차를 끌고 나올 형편이 안 되니 근처의 모텔에서 자고 오라고 하셨단다. 아, 그럴 수는 없지. 그리고 모텔비도 없었다. 아마 방도 없었을 것이다. 후배를 달래서 그냥 가자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후배 집 동네 입구까지 왔다. 길에 쌓인 눈을 보니 차가 나올 수 없는 게 이해가 되었다. 내 차도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어 대충 길에 놔두고 걸어갔다. 후배 집에 도착했다. 집 안 분위기가 썰렁했다. 알고 보니 다른 대학에 다니는 둘째 딸도 친구들과 집에 오는 중인데 연락이 안 된단다.
부모님이 바짝 긴장하고 계셨다. 라면 한 그릇 부탁해 조용히 먹고 나왔다. 그 곳에서 내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집 동네 가까이 도착하자 더 이상 차를 운전하기 힘들었다. 또 다시 그냥 길에 두고 걸어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12시 반, 윌리암스버그를 출발한지 13시간 반 만이었다.
그래도 다음 날 친구들과 약속대로 만났다.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어 한 차로 워싱턴 D.C로 갔다. 술 몇 잔 하며 눈길에서 왔던 무용담을 진하게 나눈 후 나왔다. 길에는 차가 정말 한 대도 안 보일 정도였다.
버지니아로 건너오는 14가 다리쯤에 왔을 때 소변이 급했다. 세 남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차를 다리 중간에 세웠다. 모두 내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포토맥강을 향해 섰다. 앞만 보았다. 곧 시원해졌다. 20대에나 할 수 있는 객기였다. 그 나이 때가 그립다. 그 때 적설량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22.8인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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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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