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서는 비난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 아낌없는 갈채를 보낼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Breguet‘나포리의 여왕’ 내 품속의 여왕에게….
이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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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바디 음대에서의 ‘브라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노래방 18번이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Sweet Caroline’이라 말한다. 흥겨운 음률에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감수성 높은 나의 애창곡이 된 지 오래다.
캔쿤(Cancun) 여행 중 야외 음악당에서 아마추어들의 노래 경연대회가 열렸다. 와이프가 내 등을 밀쳐서 무대에 올라가 열창하는데 ‘Good times never seems so good’ 부분에서 플라자에 모여 있던 청중 모두 ‘so good, so good, so good’하며 코러스 해주니 엄청난 힘이 되어주며 가슴에 와 닿았다. 삶에서는 비난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낼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볼티모어에 갈 기회가 있어서 와이프 손목을 잡고 피바디 음대로 갔다. 음대 복도에는 그날 연주 목록과 시간이 적혀 있었다. 많은 연주회 중 한국 이름을 찾아내서 관람하고는 벌떡 일어나서 “브라보!” 하며 목청 높이 외쳤다. 이런 연주회는 앞줄의 교수님과 학부모 그리고 동기생 몇몇 만이 경청하는 썰렁한 자리다. 그런 분위기에서 중년의 남성이 소리쳐주는 ‘브라보’ 한마디에 학부모와 연주자가 놀라며 오히려 내게 90도로 인사해준다.
총각 시절에 돈 없고 배고플 때 존스 홉킨스 대학에 다니던 인도 여친 기숙사에 달려가서는 대학원생들의 연주를 무료 관람하며 저렴한 데이트를 했었다. 그 시절에도 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그때는 장난기 어린 행동이었다면 지금은 사뭇 다르다.
# 애창곡 변천사
수중에 돈은 없어도 용기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던 나의 20대 애창곡은 ‘Song Song Blue’였다. 72년 발표 되었던 이 곡은 애잔한 음률과 슬픔을 전달하는 가사가 고독한 시간들과 암울했던 내 미군 생활을 대변해주었고 76년 발표되었던 Forever in Blue Jeans는 낮에는 마켓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대학교 강의를 듣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날의 애창곡이었다.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사랑은 한다. 여자를 만나고 여인의 향기에 빠져드니 흥얼거리기 시작한 노래가 ‘Sweet Caroline’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짐의 고통을 체험하게 되었고 남자는 외롭고 혼자 살아야 하는 동물인가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Solitary man’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에 이러쿵저러쿵 이유와 사정이 붙어 있지 않아 좋았다. 곡 첫 부분에서 머린다(Merinda)도 수(Sue)도 사랑했지만 떠나갔다고 화끈하게 밝힌다. 그러나 나는 계속 나일뿐이다(I’ll be what I am)라는 부분에서는 외로운 남자들의 전형을 보는 듯 하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무척 외로웠었다. 그런 척 안하면서 부르던 Solitary Man은 더 이상 나의 애창곡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 Neil Diamond
40대 중반 무렵, 닐 다이어몬드의 또 다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뉴욕시티에서 어렵게 성장했고 성공하여 LA에 집은 있지만 그 양쪽 어디에도 내 가슴 둘 곳 없다는 가사에서 한국을 떠나와 미국에서 시민권자로 살고 있지만 정체성이 나이 들수록 모호해지는 듯한 내 심정을 표현하는 듯했다.
가수는 노래한다. “나는... 말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그리고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나는 울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잃어버렸지만 왜 잃었는지 조차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말했고 나는 울었다.”
# 제프가 만나보았던 영웅호걸들
내 인생에서 접했던 영웅호걸들은 참으로 많았다. 그 남자들 중에는 떠버리, 똥파리, 찌질이, 쪼잔이, 간신 등으로 비유되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런 남자들을 접하면 때로는 억지웃음으로 상황을 피하거나 다시는 안 만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뒤돌아서 흉보면서도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내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상황도 있었다. 사기꾼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돈 빌리고 제 때 안 갚으면 사기꾼이라고 누구인가 말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멀리서 찾아온 남친이 대학교 무료 공연만 같이 하면 ‘쪼잔이’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한 때 100불 지폐를 꼬불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갑자기 현찰이 필요할 때(남자에게 그런 경우 많다)면 지갑 귀퉁이에 접어 숨겨두었던 100불을 끄집어내서 계산하고는 했었다.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호남 모습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야 살 수 있었다.
젊은 영웅호걸은 모두 죽었다 한다. 나이 들어서라도 영웅호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생각해본다.
# Frank Sinatra와 My Way
당신은 크리스마스의 고전 명화 중 지미 스튜워트가 빠진 ‘It’s a Wonderful Life’ 또는 찰톤 헤스톤이 없는 ‘벤허’나 ‘십계’를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My Way’는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가 불러 주어야 제격이며 노래방에서는 나이 지긋한 분이 불러 주어야 제 맛이다. 풍파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가, 역경을 체험해보지 못한 좀생이들이 부를만한 노래는 아니다.
그렇다면 남자라고 모두 남자인가. 아니다. 남자도 남자 나름이다. 하지만 영웅호걸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 모두 안에 숨쉬며 살아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My Way’를 애창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자신하건대 이민사회인 한인사회에서 만큼은 ‘My Way’를 자신 있게 부를 만한 남자들 많을듯하다. 언제인가 그 누가 당신에게 마이크를 건네 준다면 주저 없이 당신의 곡을 부탁드린다.
# 제프의 시간여행(시계 이야기)을 접으며
시작에는 끝이 있음을 알면서도 시계 바늘 돌듯 달려왔고 이제 밥줄이 다하여 잠시 쉬어 가야할 시간이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던 독자여러분들에게는 ‘안녕’을, 한국일보사에는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첫 1회 시간 여행에 등장했던 시계는 미제 Timex였다. 이번 마지막 회 시계는 Breguet Rein de Naples(나포리의 여왕)이다.
시계만 보아도 이제 제프가 많이 성장했음을 인지하실 것이다. 아버님의 유품이었던 Breguet는 아직도 수리를 못한 채 내 서재에 잠들어 있지만 와이프의 올해 생일 선물로 큰 마음먹고 구입해 선물했다. 이 시계는 나폴레옹 여동생이 나포리 여왕으로 군림할 시기에 Paul Breguet에게 명하였고 시계 명공이 직접 여왕을 알현한 후 그녀의 목걸이에서 영감을 얻어 손수 제작하였다 한다. 비록 내 와이프는 여왕 신분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속 여왕인 것은 분명하다.
시간 여행은 고난을 이겨낸 남자들에게 바치는 헌시임을 자평한 수필이다. 나는 우표, 은화 그리고 시계 등을 수집하는 것을 큰 낙으로 살고 있다. 내 와이프는 나를 hoarder(못 버리고 모으기만 하는 사람)라 부른다. 좀 버려가며 편하게 사는 남자가 되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남자였다면 과연 내 와이프가 내게 필(Feel)이 꽂혔을까? 아니라고 본다. 감수성 강하고 열정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내 물건들을 예사롭지 않게 다루는 내 모습에 반해서 그 야단치며 같이 살자고 했던 것이 아닐까.
열심히 살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아왔느냐 하는 질문에는 나 스스로 의구심이 든다. 앞으로는 좀더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 내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인가 ‘My Way’를 열창할 날도 오지 않을까? 여러분들과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을 기약하며…Au revoir! <끝>
글·사진/ Jeff Ahn
(jahn8118@gmail.com)
<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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