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의 시간여행 44-시계 이야기 #37: Rolex Daytona
첫차 Chevy, 친구와 함께 멕시코로 가는 여행길에서.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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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동차 경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 판매한 Daytona시계.
# 여자는 핸드백, 남자는 시계
여성 소모품들이 남성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화장품과 보석 그리고 각양각색의 구두들까지 선택권이 참으로 많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일층 화장품 진열대를 시작으로 1, 2, 3층 모두 여성들 품목이 차지하고 있고 남성 양복 코너는(코너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 서운할 정도로 미미하다. 하다못해 비싼 여성 드레스를 사서 세탁소에 맡기면 그 비용이 남성 양복보다 비싸다. 그래서 여성들이 더 사치스럽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알뜰살뜰 모으며 열심히 사는 부인이 있는가 하면 허영심에 들뜬 남편도 이 세상에 널려 있다. 좀 더 덩치가 큰 것으로 가보면 한인들은 ‘복부인’이란 말을 흔히 사용하는데 부인들이 남편보다 좀 더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남자의 집은 그의 성이다(A man’s home is his castle)”란 표현을 사용한다. 한국과 달리 미국 사위와 장모의 관계는 대체적으로 불편하다. 위의 말뜻을 이해하는 장인들은 사위집에 가면 말을 아끼지만 장모는 일일이 간섭하므로 사위 시선에서는 장모의 간섭이 자신의 성을 침입한 아마존 여전사로 비춰진다.
여성이 사치스럽다고 흉보는 남성들이 큰돈은 다 쓰고 다닌다. 집, 사업, 그리고 주식 등 큰 손실을 보았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성들이다.
# Chevy에서 Tesla까지
남자의 로망은 스포츠 차다. 왜냐고 묻지 마라. 태생적으로 그렇다. 남자라면 삼국지의 명장 관우와 적토마를 기억한다. 신라 장군 김유신과 천리마의 관계는 둘이 하나이었음을 의미한다.
마케도니아의 젊은 황제 알렉산더의 역사서에는 명마 부케팔루스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등장하며 정치 철학으로까지 발전한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에 나서며 로시난테와 알프스를 넘는 장면을 프랑스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는 한 화폭에 담아 영웅화시켰다. 그뿐인가. 고비 사막을 질주하던 몽고 칸들과 아라비안 반도에서 스페인까지 밀어부쳤던 이슬람의 카리프들 모두 질주하는 말 위에서 세상을 호령했다.
자동차가 말을 대체한 현대에서 남자에게 차란 단순한 소모품이나 전시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어느 차를 모느냐는 사회적 위치와 능력을 말하는 동시에 그 남자의 이상까지도 대변한다.
나에게 달리는 자유를 일깨워준 첫차는 77년 미군 때 구입한 중고 Chevy였다. 여친도 크레딧 카드도 없던 시절, 기름 값만 주머니에 있으면 무작정 텍사스 사막을 달려 어디든 상관없이 달려갔다. 어느 촌구석에서 라디에이터 호스가 터지면 찬물을 집어넣고 또 달리던 시절… 단돈 450달러에 구입했던 그 Chevy는 나에게 달리는 기쁨과 멀리 더 멀리 나를 데려다 주던 애마였다.
그 중고차를 몰고 리오 그란데 강을 넘어 멕시코를 수차례 오고 갔다. 국경선만 넘어가면 펼쳐지던 이국적 모습의 또 다른 세상과 순박해 보이던 멕시칸들의 모습에서 두고 온 어머니와 고향이 떠올랐다.
# 차고에서 숨쉬는 페라리
와이프는 나만큼 운전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멀리 노바 스코시아에서 키 웨스트까지 많은 곳들을 운전해 다녔다. 운전을 많이 해서인지 차도 참으로 많이 바꾸며 살았다. 중년 흰머리 미국 아저씨들의 로망이 얄상스러운 코뱃(covet)이라면 나는 단연코 이탈리안 스포츠카를 선호했다.
그러나 대다수 로망은 로망일 뿐이다. 로망이 현실화되면 골치 아프다. 오래전 원하던 컨버터블 페라리를 사서는 어느 봄날 와이프를 옆 좌석에 앉히고 미들 버그 와이너리를 찾았다. 발레(valet)까지 밀고 들어가니 정문 앞에 모여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고 스타 인양 의기양양해졌다.
젊은 발레는 토끼 눈에 코가 벌렁거리며 “Yes, Sir” 하며 성큼 키를 받아간다. 와인 테스팅 장소로 조용히 발길을 옮기는데 5단 기어를 처음 경험하는지 클러치 소리 요란하고 차는 후진 하다 뒤차와 거의 충돌할 뻔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고 와인 향을 즐길 수 없어 다시 차 위치로 걸어가니 또 다른 발레가 뛰어와서는 매뉴얼 기어 운전 경험이 있다며 나를 안정시킨다. 그렇다. 세상의 명품들은 그것이 무엇이던 애물단지가 대부분이다. 특히 배우자가 그렇다. 그래서 평범한 것이 좋다 말한다.
내 페라리는 일년 대부분의 시간을 차고에서 숨 쉰다. 운전할 기회가 없으니 아직도 3만 마일을 넘지 못하고 있다. 날아오는 비싼 보험 청구서를 보며 와이프는 늘 불평한다. 남편 마음은 고비 사막과 알프스에 가 있건만.
# Tesla와 변화되는 남성미
얼마 있으면 미국 생활 50년이 다가온다. 그중 첫 20년은 미국산 차만을 고집했었다. Chevy, Ford, Dodge, Oldsmobile 등 여러 종을 사서 몰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차에 현혹되어 한동안 Toyota에서 Lexus로 물타기 하며 거의 일제에 맹목했었다.
한인 가정 거실에 소니가 놓여 있었듯이 차고에는 일제 차들이 있었다. 워싱턴 지역에서 한해에 한대만 판매한다는 Lexus 600h LS를 사서 몰았는데 그때까지는 그 차가 최고라 생각했다. 애국자라 자청하며 현대의 성장을 목격하면서도 막상 구입은 안하고 있었다.
5년 전 미국산 테슬라를 구입하면서 다시 미제로 풀 서클 돌아왔다.
차를 뽑아서는 66번을 질주하며 맘속으로 독일 아우토반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며 페달을 밟는데 차가 총알같이 날아가면서 전신이 뒤로 제쳐졌다. 오랜 세월 잊힌 야성의 세계가 다시 먼 추억 속에서 부활하는 듯 보였다. 스피드 게이지가 하늘로 치솟을수록 심장이 벌렁이며 마의 속삭임을 전한다. “밟아라, 달려라.”
아무리 밟아도 소리 없는 전기 차에서 Ferrari의 ‘카랑 카랑’한 이태리언 남자 맛이 거세당한 것은 이해한다. 또한 일본인들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인테리어 맛이 부족한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젊은 시절 익숙했던 Chevy 8기통의 ‘붐붐’이 소실된 점이 애틋한 아쉬움으로 남으며 미국의 남성미 아니 남성미의 기준 자체가 지각변동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면 미국 남자의 참 멋은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한다.
# 한인처럼 묵직했던 미국인들
자랄 때 묵직하고 말없는 남자가 멋있다고 들었다. 그 당시 유명했던 미국 남우들 모두 그러했다. 몽고메리 크리프트, 알랜 라드, 지미 스트워트, 스펜서 트레이시 등 모두 목소리 잔잔한 신사이면서 필요할 때 해결사 역을 멋지게 해냈다.
멋진 남자치고 소리 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앨비스 프레슬리도 버터 맛 나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여성들 마음을 잡았고 나는 그의 잔잔한 성가들과 그에 기반한 노래들(the grass don’t mind이나 crying in the chapel)이 참으로 좋다.
미국의 위대성은 테드 루스벨트가 잘 말해주었다. “큰 막대기는 가지고 있고 목소리는 낮추어라.”
한국 아버지의 위상은 말없는 묵직함과 열심히 일하는 행동에 기초하고 있다. 자동차 좋아하는 한인 중 자동차 경주 구경하는 사람 못 보았다. 오래전 데이토나 자동차 경기를 참관하고 왜 그들이 열광하는지 이해가 갔다.
내가 애용하는 테이토나 시계는 자동차 경주에 필요한 시계다. 젊은 날 친구들과 해보았던 자동차 경주때 그런 시계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꼭 필요한 시계도 아니지만 애용하는 이유는 미국의 또 다른 상징이 된 전기차 Tesla 모두 나에게는 여러 상징성이 있다.
<다음에 계속>
글·사진/ Jeff Ahn
(jahn8118@gmail.com)
<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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