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한국일보 미주문예 공모전 수필부문 당선작
당선소감 l 김지나
창문으로 보는 드라마’는 우리 집 반려견 이야기다. 한국에서 누구의 간택도 받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과 그 강아지를 통해 본 시각으로 나의 이민 정착기와 함께 풀어낸 일상 에세이다. 우리가 생각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사가 반영되어 당선작이 되었나 보다. 한국일보의 인연이 칼럼으로 시작되어 당선작까지 이어져 등단의 기쁨을 누리게 되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
이 녀석은 일어나자마자 내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일단 얼굴을 내 베개에 얹고부터 푸르스름한 아침맞이가 시작된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고 긴 털 때문에 까만 눈망울을 덮어 버리지만, 아침부터 뭐가 그리 궁금한지 털 사이로 보이는 시선을 조용하고 푸른 나무에 고정시킨다.
이 녀석은 한국에서 왔다. 거리에서 홀로 헤매다 어떤 기관에 들어가고 입양을 기다렸지만, 턱이 돌출되어 그 누구의 간택도 받지 못해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우리 집에 올 운명이었나 보다.
해외입양 기관으로 서류가 흘러가고 어찌어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왔다. 아마 수면제에 취해 케이지에서 하루를 그것도 짐칸에 수많은 캐리어와 뒤섞여 짐짝처럼 가수면 상태로 하늘 안에 갇혔었겠지. 불쌍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서인지 케이지에 들어가는 것을 거의 죽음의 공포로 여긴다.
오자마자 대소변 교육을 위해 케이지에 넣으니 손톱이 빠질 만큼 난리를 치며 필사적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서류상에도 분리불안증이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버려진 공포가 그대로 내재되어 있는 작고 여린 생명체임이 분명하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엄마 없이 버려졌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케이지행이 안 되니 집안에 그대로 녀석을 놓고 나가야 하는 불안감이 컸다. 잠시라도 문을 열고 나갈라치면 극도의 공포로 그리 서럽게 울 수가 없다. 마치 엄마 잃은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식구가 올 때까지 그대로 문 앞에 엎드려 꼼짝 않고 가족을 기다리곤 했다. 이런 게 분리불안이구나. 아직 가족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없는 게 당연하고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으니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믿음을 심어줘야 했다.
간식을 많이 준다든가, 만족스러운 눈빛이 보일 때까지 꼭 끌어안고 머리와 몸을 쓰다듬어주어 사랑을 확인시켜 준다든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여기저기 숨겨놓아 주인이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꺼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조금씩 우리가 가족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는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가고 우리의 들고남에 별 신경 쓰이지 않는지 외출하고 돌아온 재회의 기쁜 세리머니 시간이 점점 짧아지게 되었다.
그러다 이 녀석에게 중요한 놀잇감이 생겼다. 우리 인간으로 말하면 바깥세상의 돌아가는 판이 궁금해졌나 보다. 사방을 살필 수 있는 커다란 창문에 기대어 종일 세상을 관찰하며 마치 흥미로운 티브이를 보는 것 같다. 청솔모의 출현만으로 흥분이 되어 눈앞에 있는 먹잇감을 사냥하듯 이리저리 법석을 떨며 뛰어다녔고 새가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만 봐도 소리치며 날아오를 듯한 기세를 보였다. 사슴들이 잔디에 밭을 잠시 디딜라치면 컹컹 소리치며 창문에 달려들어 창밖의 동물들도 이 녀석의 유리창 너머의 호통에 움찔하며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어라? 홈그라운드의 녀석들이 생판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의 가짜 위용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창밖 동물들은 이 녀석이 집안에서 혼자 날뛰는 것에 더 이상 동요되지 않고 원래 하던 대로 유유자적했다. 청설모는 친구들과 추운 나뭇가지를 발바닥에 땀나도록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숨바꼭질하듯 뛰어다닌다. 새들도 뭉쳐 다니며 우리 녀석의 눈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사슴 가족도 줄지어 서서 이 녀석의 반응에 놀라기는커녕 한 번의 고갯짓으로 다리를 곧추세우며 그저 응시만 하더니 곧장 그들의 길로 느긋하게 가버린다.
애가 타는 건 우리 녀석뿐이다.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되는지 혼자만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뒤고 컹컹 짖었다가 흥흥거리며 포기했다가 엎드려버린다. 그래도 그들의 행동이 궁금한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알을 열심히 굴려 보초를 서는 듯해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녀석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나도 그들의 드라마 같은 세상을 같이 보기 시작했다.
청설모가 원숭이처럼 나무를 이리저리 날쌔게 날아다니다 땅으로 내려오면 자기 세상이 아닌 남의 영역에 들어가는 듯 서서히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기어간다. 서서히 발레하듯 걷다 도토리를 주우면 두 손으로 잡고 빠르게 비빈다. 그러다 우리랑 눈이 딱 마주치면 얼음이 되어 버린다.
비비던 손뿐 아니라 눈동자 하나도 흔들림 없이 순간적인 생명의 위험을 느끼듯 숨죽여 우리를 관찰한다. 이내 우리가 창살 안, 그러니까 자기를 절대 해칠 수 없는 유리 안 동물이라는 걸 알아채고 넓적하고 자기 몸보다 커다랗고 풍성한 꼬리털을 흔들며 유유히 돌아가 버린다.
이 녀석이 이곳에 온 지 벌써 2년이 넘어간다. 내가 향수병으로 밤낮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적응한 시간이 오래 걸렸듯이 이 녀석은 분리불안증으로 우리를 자기의 가족으로 믿고 따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가족뿐 아니라 변화된 세상에도 적응이 되었나 보다. 이제는 더 이상 청솔모의 갑작스런 출몰에도 동요되지 않고 몰려다니는 새들의 꺽꺽대는 날갯짓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사슴 가족의 매서운 눈빛도 마주하며 시선을 고정할 줄도 알게 되었다.
이 녀석이 보는 세상이 내 세상이면 어떨까? 세상사 아무런 걱정 없는 날들이다가도 훅 치고 들어오는 것들에 현혹되어 물불 못 가리고 날뛰다 또 언제 그랬나 싶게 조용해지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반드시 흘러간다는 걸 아는 눈으로 보면 편할 텐데 말이다. 지금처럼 조용히 관망하는 이 녀석의 엄마로서 해맑은 세상 바라보기를 같이 하면 좋겠다. 달빛이 극에 찬 보름달이 밤을 넘어가는 새벽이다.
<
- 김지나/엘리콧시티,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