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상원의 여장부, 다이앤 파인스타인이 지난 연말 굴욕적인 경험을 했다.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똑같은 질문을 두 번 한 것이다. 고령인 그의 기억력 문제가 바로 제기되었다.
11월 중순 열린 청문회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콘텐츠 규제정책을 추궁하는 자리였다. 파인스타인은 ‘대선 승리’를 주장하는 트럼프의 트윗을 읽으며 트위터의 최고경영자 잭 도시에게 허위정보 단속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따졌다. 이어 도시가 대답을 하고나자 파인스타인은 엄숙하게 다시 질문을 했다. 트럼프의 트윗까지 다시 읽으며 또박또박 질문하는 모습이 방금 자신이 같은 질문을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소셜미디어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은퇴할 때!”라는 큼직한 글씨와 함께 그 망신스런 장면은 바로 유튜브에 올랐다.
파인스타인은 87세로 연방상원 최고령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장 10년, 상원의원 28년 경력의 그는 타고난 근성에 예리함과 추진력을 갖춘 탁월한 정치인이다. 그런 그에게서 이상 징후가 보인 것은 2~3년 전부터였다. 방금 보고를 받고는 보고하지 않는다고 스탭을 질책하는 일이 생겼다. 이후 보좌관들과 가까운 의원들만 알던 문제가 청문회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되었으니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파인스타인은 법사위 민주당 간사 자리를 내놓고 소속위원으로 남는 선에서 일단 사태를 수습했다.
일반적으로 70대가 되면 인지기능이 저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기 기억력이 떨어지고, 사건의 세부를 기억하기 어려우며, 여러 일을 동시에 하기 어렵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70대 중반쯤 되면 책임이 막중한 요직은 맡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젊은 층의 주장이다.
대선이 있던 지난해, 후보들의 나이는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민주당 경선 최종주자였던 샌더스(현재 79)와 바이든(78), 그리고 공화당의 트럼프(74)가 모두 70대 중후반이어서 “대통령 직무 수행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주장들이 터져 나왔다. 잡지 폴리티코는 ‘2020 대선은 치매 캠페인’이라며 후보들의 고령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익장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연방하원의 펠로시 의장은 다음 달이면 81세가 되며, 연방상원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는 2주후 79세가 된다. 연방상원에는 80대가 7명이나 된다. 한편, 미국에서 대표적 ‘할아버지 대통령’으로 통하던 레이건은 취임 당시 70세가 채 못 되었다.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정치인들의 나이가 많아졌다.
왜 이렇게 정치인들이 고령화하는 걸까? 첫째는 인구 고령화와 상관이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급속도로 늘고 있고, 선거 때마다 가장 열심히 투표하는 연령층은 바로 이들이다. 정치학 연구를 보면 유권자들은 자기와 비슷한 연배의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선거자금 동원 능력이다. 연륜이 깊은 후보들은 오랜 세월 다져놓은 탄탄한 기부 네트웍이 있는 반면 젊은 후보들은 천문학적 선거자금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반짝 뜨던 후보들이 도중하차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고령의 정치인들은 직무수행능력이 떨어질까? 그건 아니라고 뇌 전문가들은 말한다. 개인차가 커서 나이만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장기가 노화하지만 뇌는 다르다고 CNN의 의학전문기자이자 뇌 전문 신경외과의인 산제이 굽타는 말한다. 뇌는 쓸수록 좋아지고, 뇌가 건강하면 심신의 전반적 건강이 개선된다고 그는 덧붙인다.
실제로 20세기의 위대한 지도자들인 만델라, 처칠, 아데나워(서독)는 모두 70대에 대통령/총리로 최고의 역량을 발휘했다. 한국에서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만 100세에 여전히 강연과 저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00세를 살아보니 90세까지는 정신적 성장이 가능하더라고 그는 말한다.
고령사회에서 고령의 인적자원과 관련, 사회가 할 일과 개인이 할 일이 있다. 사회는 단지 나이를 이유로 각 분야 원로들의 지혜와 통찰력, 전문성을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젊은 정치인들의 활력과 혁신도 필요하지만 여기에 원로 정치인들의 내공과 평정심이 더해진다면 사회는 그만큼 안정적이 될 것이다.
정치인은 물론, 학자 의사 변호사 등 고령의 전문직 개개인은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서글픈 순간이 오기 전까지 해야 할 일은 뇌 건강 챙기기. 비결은 도전이다. 외국어 공부나 악기연주 등 전혀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뇌에는 새로운 신경회로가 만들어지고, 회로가 많을수록 뇌 기능은 개선된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60대 같은 80대가 있고, 80대보다 늙은 60대가 있다. 기본적으로 뇌가 얼마나 젊은가의 차이이다. 뇌 권위자 굽타는 새해결심으로 ‘뇌 건강 개선’을 권한다. 고령의 정치인들은 물론 고령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시도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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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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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맛깔스러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입니다. 미국(외국)은 한국과 비교하여 신기한 일들이 많은데, 대법관(Supreme Court Justice, Associate Justice)을 종신직으로 하고 있는 것도, 임기보장을 위해 임기제로 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너무 다르죠. 건국초기에는 사람의 수명이 이렇게 길어질지는 몰랐겠죠?
나이로 두뇌가 좀 둔화되도 밑에 똘똘한 부하를 두면 되죠. 솔직히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 말 한마디도 다 보좌관들이 만들어 내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