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잠시 집을 비우기만 해도 어린 자식이 하늘이 무너져라 울었던 그런 엄마였다.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아무리 소리 내어 불러 보아도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말이지 미치도록 슬퍼야 마땅한데... 희한하다. 엄마의 부재가 당연했던가? 오랜 투병 생활과 나의 타국생활로 엄마의 존재를 거의 잊다시피 하며 살아서인지 엄마의 부재가 너무도 당연하고 이렇게 쉽게 잊어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자식이 이 세상 또 어디 있을까?
시집을 가고 자식을 낳으면서 내 가족을 갖게 되면서 뒷방으로 밀려나 버린 나의 엄마. 더 이상 나의 엄마는 나를 지켜주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냥 내 오랜 가족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 굳이 엄마를 찾을 일도 없고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조차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엄마가 있었나 싶을 만큼 엄마의 자리는 비어 가고 내 자식의 엄마인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정작 내 엄마를 멀리하고 내 자식만 생각하는 자식의 엄마로만 말이다.
그러다 내 딸의 집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어련히 잘할까 생각했지만, 막상 멀리 떨어져 혼자 살고있는 모습을 보니 생각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엄마의 기질이 발동되어 치우려는데 제발 치우지 말라는 단호한 딸의 대답을 뒤로하고 내 의도대로 좀 더 진도를 나가면서 의견 대립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큰소리가 났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혼란스러웠다.
딸의 뉘앙스는 엄마의 도움은 필요 없으니 엄마의 방식을 자신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면서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가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한순간에 훌쩍 커버리는 걸리버가 된 듯 몸도 마음도 키다리가 되어버렸다. 자식이 사는 집에 부모가 청소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접하다 보니 그동안 시원하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힘들게 살면서도 자식에 대한 배려와 친절함 그리고 개인의 인격체로 지켜왔던 부모로서의 신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마음을 겪어야 했다.
예전처럼 부모로서의 권위가 없어진 지 오래인 건 사실이다. 나 또한 권위적인 부모상은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를 멀게 하고 부모와 대화단절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결국, 친구 같은 부모를 자청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했다. 나의 부모에게 받았던 교육을 철저히 부정하며 오히려 부모가 나에게 했던 생활과 교육방식을 뒤집어 생각하기만 하면 지금 세대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생각했다. 이런 심각한 간극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그러면서 나의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시집을 가고 자기 아이를 길러봐야 부모의 속을 이해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타국으로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엄마의 영원한 부재를 잊을 만큼 바삐 살다 뒤돌아보니 가슴에 총을 맞은 것처럼 뻥 뚫려버렸음을 인식했다. 나는 이제 나를 낳아주신 엄마의 존재의미를 상실했고 나의 뿌리가 잘려나갔다. 그때는 엄마의 사랑을 알지 못했다. 자식은 죽어도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죽을 때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데 내가 내 자식을 키우고 이번 일을 겪어보니 정말 자식은 부모의 끝없는 사랑을 알지 못함이 정답일 수밖에 없고 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게 또한 인간이지 싶다.
이제는 정말 내 마음의 빈집이 되어버린 엄마의 부재가 언젠가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크기로 느닷없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내 자식에게 받은 상처로 폐를 찌르는 아픔과 함께 내 엄마의 부재로 뼛속 깊숙이 느껴지는 상실감과 교차 되는 이 시점에서 신구(新舊)가 대물림되는 공통분모를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사랑의 마음과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주셨던 나의 마음의 집을 이제는 나의 자식에게 이어 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자식 앞에, 사랑받은 내가 있었다. 부모 이전에 자식이었던 내가 이제는 부모 노릇을 하고 그 자식에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덮으려 내 부모를 떠올린다.
<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