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 “지금은 거론할 때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실형이 확정되자마자 사면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국민정서도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문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촛불 혁명의 명분 손상이나 정권의 굴복으로 인식되는 것을 우려한 것 같다. 자신의 정권 말기에 사면을 제안한 민주당 이낙연 대표에게 정국 주도권이 쏠리고 급속한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는 부담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권 교체기에는 차기 유력 대선후보가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통례이다. 자신의 적극 지지 세력인 ‘친문계’가 격렬하게 반대할 경우를 가상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79조는 대통령에게 ‘특별사면’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도 없이 국가 공익과 국민단합을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반란 등 국사범이나 중범죄자를 ‘용서’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느니 국민정서가 무르익지 않았다느니 구구한 변명을 덧붙이는 것은 사면 후유증을 두려워하거나 아량을 베풀만한 의도가 없는 것처럼만 보일 뿐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사면거론 취지는 ‘국민통합’이었다. 촛불 혁명의 동기 또한 권력남용, 부정비리 일소, 화해, 평등 그리고 모두가 ‘통합’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켜가는 것이 아니었나. 촛불 혁명이 결코 응징 보복, 앙갚음, 억압, 장기집권 등 치졸한 탐욕들에 목적을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로 며칠 전 우리는 미국의 신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았다. 다원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건 정부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통합’을 강조하였다.
이른바 단결하는 나라(Melting Pot), 하나로 뭉쳐 새 길로 가자(Salad Bowl)는 함성이 심금을 울렸다. 우리도 모범 삼을 만한 장면이 아니었던가 싶다.
문 대통령도 임기를 마치기 전에 어차피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넣어 둔 채 냉혈 지도자의 인상을 남겨 놓고 임기를 마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념이 달랐던 두 전직 국가 지도자가 구속 중인 상태에서 국민통합을 외치는 것 자체가 모순이요 허구일 수밖에 없다.
용서는 크면 클수록 큰 용기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자존심 있는 세력은 용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여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에 남은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관용, 포용, 용서가 많았고 개인 안위나 이익에 집착하지 않았다.
사면의 조건으로 ‘사과’를 조건부로 하는 것은 또 뭔가. 용서에 조건을 다는 것은 흔쾌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개운치가 않다.
전제조건 없는, 즉 토를 달지 않은 사면이라야 국민통합에 더 큰 감동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과를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국민들이 평가할 것이고 전적으로 사면 혜택을 받은 두 전직 대통령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오히려 불신만 불러올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정서를 기다리기보다는 관용의 자세로 반대자들의 동의를 구하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책무일 것이다.
물론 임기 종료를 앞둔 문 대통령으로서는 연착륙(Soft Landing)에 관심이 클 것이다. 그럴수록 보수정권에 대한 증오에 매달려 보복의 감정선에 취해 있는 자들을 설득하여 국가 평화, 국민 통합의 큰길로 이끌어야 한다.
김대중은 자신에게 사형을 내렸던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김영삼에게 건의하고 취임 시작과 함께 억압의 화신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친문계’는 말로는 김대중 정신을 이어받는다면서도 이·박 사면에 극력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 필요에 따라서만 김대중 깃발을 내 흔드는 것 같다.
정히 문 대통령이 사면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면 ‘국민투표’를 인용하면 될 것이다. 국민투표는 헌법 제72조에 명시돼 있는 국가 중대사에 국민의 직접 참정권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야말로 국민통합의 첩경이고 현실적으로 당면한 국가 중대사이다. 국민투표의 결과를 놓고 누구도 거역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국민통합을 위한 사면 건의는 시의 적절한 제안이었고 또한 다수 국민의 여망이라고 본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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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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