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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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버뇌 모리스의 약력
△1752년 1월 31일 뉴욕 모리사니아 출생 △1768년 킹스 칼리지 졸업 △1771 변호사 개업 △1775-77년 뉴욕 지역 의회 의원
△1776년 뉴욕 제헌회의 대의원 △1778-79년 대륙회의 대의원 △1781-85년 합중국(연합) 재무담당관보 △1787년 헌법제정회의 대의원 △1792-94년 합중국 프랑스 공사 △1800-03년 합중국 상원의원 △1816년 11월 6일 뉴욕 모리시아나에서 영면
“우리 합중국 인민들은 더욱 완벽한 연방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며 국내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 합중국 헌법의 최종본 작성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구버뇌 모리스의 펜에서 나온 유명한 구절이다. 그는 때로는 장황했지만 유창한 연설가였으며 뉴욕 의회와 제헌회의의 대의원이었다. 합중국 상원도 이따금 논리와 위트와 상상력이 멋지게 구사된 그의 명연설에 움직이곤 했다.
그는 귀족적 성향이 강해서 1774년에는 “모국과의 재결합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이다.”라고 쓴 적도 있었지만 1776년에는 뉴욕 의회에서 식민지를 대변하여 왕에게 반대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일찍이 강력하고 통합된 중앙의회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역사가 데이빗 무지(David Muzzey)는 모리스에 관하여 “그는 국가의 탄생 이전부터 국가주의자였다”라고 썼다.
대륙회의에서 모리스는 여러 분과의 위원장을 맡았고, 그의 천부적인 펜은 프랑스 공사였던 프랭클린에게 송달하는 훈령이나 평화사절단을 위한 세부적인 지시사항 등과 같이 중요한 문서를 생산해 냈으며, 그것들은 최종 조약문서의 조항으로 반영되었다. 연합회의 대의원으로서 그는 연합헌장을 지지하고 서명했다.
제헌회의에서 모리스는 어느 대의원보다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했다. 그는 대통령과 상원은 종신 선출직이어야 하고 상원은 부유한 유산계층을 대표하면서 하원의 민주적 성격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견은,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가 제안했던 주 협의체(Council of State)에 대한 의견은 대통령의 내각이란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또한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국민에 의해서 선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이 완성되자 모리스는 편집과 윤문을 맡았고, 그리고, 그 유명한 전문을 작성했다. 헌법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자 모리스는 가장 헌신적인 (헌법의) 지지자 가운데 한명임을 입증했다. 대의원들의 서명을 받았던 9월 17일 모리스는 서명을 거부했던 에드문드 랜돌프에게 답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1790년 모리스는 합중국 프랑스 공사로서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나라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프랑스 혁명가들에게는 아메리카 혁명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명백히 귀족적 감수성을 지녔던 연방주의자였다. 파리에서 그는 마르퀴스 라파옛와 왕을 포함한 프랑스 여러 귀족의 탈출을 돕는 일에 관여하게 되었고 이에 프랑스 혁명정부는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 귀국 후 그는 연방 상원에서 의정활동을 했고, 후일 서부진출 통로를 열어주었던 이리 운하(Erie Canal) 개발을 기획했던 그룹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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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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