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박자박 소웁탐방 - 통영 산양읍, 일주도로 따라 예술인 기행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본 일출 풍경. 올망졸망한 섬들 사이로 해가 뜨는 풍경은 망망대해 동해의 일출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맑고 풍성한 통영 바다는 윤이상·박경리·김춘수·전혁림 등 걸출한 예술인을 배출한 자양분이었다. 통영은 조선 선조 때 설치한‘삼도수군통제영’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인근 고성의 변방이었던 어촌마을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선 수군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의 통영을 군사도시로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근현대를 관통하며 걸출한 음악가 소설가 시인 미술가를 배출한 예향의 이미지가 강하다.
통영 출신 소설가 박경리는 예견이라도 한 듯‘토지’에 그 이유를 풀어놓았다.“전쟁이 끝나자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귀향을 서둘렀겠지만 해류 관계인지 천하일미를 자랑하는 해산물이며, 아름다운 풍광, 온화한 기후, 넘실대는 바다, 아득한 저편에 대한 동경, 그러한 생활의 터전을 사랑했을 감성 풍부한 장인들과 자유인들이 잔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상상키 어렵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남쪽 끝머리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른 통영의 주역들이며 뿌리가 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 남쪽 끝머리에서 한 발 더 내려간 곳, 미륵도를 한 바퀴 돌면 바다만큼 풍성한 통영의 예술인과 만난다.
■전혁림의 코발트블루, 김춘수의 꽃
통영항과 좁은 바다(이곳에선 ‘강구안’이라 부른다)를 사이에 둔 미륵도는 섬이면서 섬이 아니다. 원래 통영반도와 연결돼 썰물 때에는 걸어서 건널 수 있었고, 밀물 때는 폭 200여m의 바닷길이 물에 잠기는 지형이었다.
이 물길을 확장해 1932년 지금의 통영운하가 만들어졌고, 그 아래에는 해저터널이 건설됐다. 지금은 좁은 물목을 가로지르는 충무교와 통영대교, 2개의 다리로 연결된다. 현재 섬의 북쪽 일부는 시내권역에 포함되고, 나머지는 산양읍으로 구분된다.
통영대교를 건너 첫 번째 삼거리에 이르면 정면 콘크리트 옹벽에 대형 타일벽화가 눈길을 잡는다. 여느 도시의 흔한 벽화 장식이 아니다.
현대미술의 거장 전혁림(1915~ 2010) 화백의 ‘풍어제’를 가로 30m, 세로 9m의 타일벽화로 재현한 작품이다. 하얀 바탕에 진한 원색과 부드러운 파스텔 색상이 가미된 경쾌한 그림이다. 원과 직선이 교차하는 공간에 갯마을의 풍요로움과 깊은 바다의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고 보니 다리 오른쪽 고층 아파트 외벽에도 비슷한 풍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삼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혁림미술관이 있다. 본인이 30여년간 생활하던 사택을 허물고 바다와 등대, 전통 사찰의 핵심인 탑의 형상을 접목해 신축했다. 그의 작품을 타일에 옮겨 외벽을 장식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특히 3층 외벽은 화백의 1998년작 ‘창(Window)’을 재구성하고 11종의 도자기 작품을 조합한 대형 벽화 작품이다.
전혁림은 미술전문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않았고 통영수산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며 한국 화단의 거목으로 우뚝 선 인물이다. 학연이 없으니 서울을 중심으로 한 화단과는 거리를 두고 고향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와 화풍을 쌓았다.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코발트블루는 맑고 투명하고 풍성하기까지 한 통영 바다에 대한 자부심이자 찬사다.
전혁림은 생전에 ‘코발트블루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쪽빛 한 술에 청색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일어나는 번짐의 가장자리 색’이라고 표현했다. 전혁림을 ‘통영의 피카소’라 부르는 것은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에 비유하는 것만큼이나 허무하다. 통영 바다 자체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브랜드이니 ‘통영 화가 전혁림’이면 충분하다.
미술관에서 약 1㎞를 내려오면 강구안 바닷가에 ‘꽃’의 시인 ‘김춘수유품전시관’이 있다. 4층 건물 중 2개 층에 시인과 통영의 관계, 생전의 수상 목록과 육필 원고, 집필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은 각이 지고 딱딱한 관공서처럼 보여 사물의 존재론적 세계를 집요하게 탐구한 시인의 인생을 담는 공간으로 썩 어울린다고 보기 힘들다. 작품과 유품을 단조롭게 나열한 내부 전시도 아쉬움이 남는다.
김춘수(1922~2004)는 동시대 지역 예술인으로 전혁림과도 각별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사후 출판된 시집 ‘꽃인 듯 눈물인 듯’에서 전혁림은 “김시백(詩伯)은 블루를 무척 좋아했다. 나를 비롯한 김시백은 바다와 연하여 형성된 포구를 지척에 두고 성장했고, 사계절이 가져다준 바다의 풍부한 변화는 나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초기 문학의 근간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리라 믿는다”고 회고했다.
■윤이상이 그리워하고 박경리가 잠든 곳
김춘수유품전시관에서 미륵도 동쪽 끝머리로 이동하면 통영국제음악당이 있다. 한려수도의 상징인 통영 앞바다가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갈매기 두 마리가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형상으로 지었다. 인구 13만명 남짓한 소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큰 공연장인데,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1917~1995)에 대한 헌정이라 해도 무방하다.
산청에서 태어난 윤이상은 세 살 때 통영으로 이주해 유년과 청년기를 보냈고, 오사카 음악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 통영으로 돌아와 교사로도 활동했다. 광복 후 통영의 거의 모든 학교 교가를 작곡했을 정도로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1957년부터 베를린에 정착해 당대의 거장들과 교류하며 세계적 음악가로 명성을 쌓았지만, 반공을 국시로 내건 박정희 정권과는 화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1967년 동베를린(동백림)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그는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된 후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주축이 된 200여명의 유럽 음악인이 한국 정부에 항의하는 등 그의 수감은 국제적 문제로 번졌다.
결국 1969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에게 통영의 잔잔한 파도 소리는 음악 자체였다. 통영 바다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고향이자 그리움의 대상이다.
음악당 아래 바닷가에는 현재 해안 산책로가 조성돼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 수륙마을을 거쳐 일운항 부근까지 이어지는 약 4㎞ 도남해안길은 한려수도를 조망하며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 좋다.
특히 크고 작은 섬들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섬 사이에 대로처럼 뻗은 물길로 고깃배들이 부지런히 드나들어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동해의 일출에 비하면 한결 안정적이면서도 푸근하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통영에서도 빼어나기로 소문난 산양관광일주도로다. 미륵도를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 코스로 일부 구간에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체로 1982년 완공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도로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하다는 얘기다. 해안의 작은 포구를 연결하는 도로는 리듬을 타듯 바다와 산길을 번갈아 오르내린다. 속도가 느려지는 만큼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섬의 남쪽 달아항을 지나면 높은 언덕배기에 달아공원이 있다. 최근 일몰 포인트로 유명해진 곳이다. 수평선 부근 먼 산자락으로 해가 떨어지면 띄엄띄엄 봉긋하게 솟은 섬들 사이 바다가 붉게 물든다.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는 서해와는 또 다른 일몰 풍광이다.
일주도로 산양읍사무소 부근에서 섬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오르면, 고갯마루에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단아한 붉은 벽돌 기념관에서 박경리(1926~2008) 묘소까지는 공원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육필 원고와 통영을 배경으로 쓴 ‘김약국의 딸들’을 시각화한 전시물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전시관 마당의 동상 기단에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의 유고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산다는 것’ 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썼다는 거장의 회고가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깊다. 동상은 아슴푸레하게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데, 도로 주변 전봇대와 전깃줄이 못내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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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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