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
▲토마스 미플린의 약력
△1744년 1월 10일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출생 △1760년 필라델피아 대학 졸업 △1772-75년 펜실베이니아 입법부 회원
△1774-75년 대륙회의 대의원 △1775년워싱턴 장군 부관 △1775-77년 대륙군 병참사령관 △1778-81년 펜실베이니아 입법부 의원
△1782년 연합회의 대의원 △1783-84 연합회의 의장 △1785-88 펜실베이니아 입법부 대변인 △1787 제헌회의 대의원
△1788-90년 펜실베이니아 최고행정관 △1790-99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1799-1800년 펜실베이니아 입법부 대의원
△1800년 1월 20일 펜실베이니아 랭카스터에서 영면
운명의 장난으로 토마스 미플린은 혁명전쟁 초기에 조지 워싱턴의 첫 번째 부관으로 복무하였으나 전쟁이 끝났을 때는 연합회의 의장으로서 워싱턴의 전역서를 수리하는 남자가 되었다. 그 중간의 기간 동안 미플린은 대륙군 초대 병참사령관으로 복무하며 식민지의 대의에 기여했으며 심심찮게 자신을 위한 실속도 챙겼다. 그는 신설군에게 절박하게 요구되는 군수물자를 확보하였으며, 지나친 이익을 챙긴다는 의심을 받았다.
사업 경험이 있고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실력이 뛰어났음에도 미플린은 전장을 선호했고 롱아일랜드와 필라델피아 인근에서의 군사작전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퀘이커 교도로 태어나 성장하였으나 군사 활동으로 인해 그의 교회로부터 파면 당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었던 미플린은 워싱턴의 신망을 잃었고, 워싱턴을 (축출하고) 호레이쇼 게이트 장군으로 교체하려는 움직임이었던 콘웨이 카발(the Conway Cabal)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미플린은 1788년 군에서 전역함으로써 그의 군자금 유용에 대한 군사법원의 조치를 모면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술주정꾼이라는 끊임없는 구설에도 불구하고, 미플린은 이 땅에서 최고위직이었던 연합회의 의장 뿐만 아니라 펜실베이니아 최고행정관과 주지사, 제헌회의 대의원에 이르기까지 책임 있는 자리에 계속해서 선출되었다.
미플린의 의미 있는 공헌 중 대부분은 그의 젊은 시절에 이루어졌다. 제 1차와 2차 대륙회의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그의 자세는 확고했다. 그리고 위태로운 시기였던 1776년부터 1777년까지 워싱턴의 부대에 병력과 물자를 조달하는 데 기여했다. 1784년 (연합회의) 의장으로서 대영제국과의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헌회의 대의원이었지만 (헌법에) 서명한 것 말고는 의미심장한 기여를 했던 바는 없었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로서 업무태만으로 기소되기도 했지만 도로를 정비했고 주(州)의 교정 및 사법시스템을 개혁했다. 주의 권한에 관해서는 제퍼슨의 원칙에 공감했지만 막상 위스키 반란(Whiskey Rebellion)이 일어나자 민병대로 하여금 연방 징세원을 지원하도록 지시했다.
부패와 술주정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교성이 좋았던 미플린은 인기 있는 인물로 남았다. 자석같은 성품 그리고 효과적인 연설가로서 그는 혁명의 가장 중대한 30년 세월동안 다양한 선출직을 거칠 수 있었다.
------------------------------------------------------------------------------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
이종권 / 번역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