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 어떤 과제를 던져주던 피나는 투쟁으로 이겨 나가야한다
1990년 18K Credor 금관 문양은 Rolex을 오마주(Hommage)한 인상이 물씬 나며 굳이 동양적인 의미를 찾자면 문양이 한문자‘산’을 표현한 듯하기도 하다.
이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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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가 일제 시계-Credor
일본의 자존심은 1881년 설립된 세이코다. 스위스 브랜드들과 견주기 위해 설립한 계열사가 Grand Seiko와 Credor인데 Grand Seiko가 서구 고객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 Credor는 내수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가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시계 애호가(aficionado)가 아닌 이상 Credor란 상품명은 생소할 것이다. 심플한 디자인의 Credor가 5만불에 시판되고 있다면 당신은 놀랄 것이다. 90년대 잘나가던 동서가 일본에서 내 와이프에게 선물해준 18금 Credor는 세이코의 간결한 맛이 돋보이지만 Lladro같은 제품에서 같은 우아함이 결여되었다. 고가 사업 목표와 상반된 자충수 느낌이 물씬 나는 상품이다. 우선 일제임에도 일본의 자취가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Credor는 프랑스어로 ‘금관’이라는 제법 고상한 뜻이다. 그러나 포르투갈 그리고 라틴어로는 ‘채권자’라는 의미도 있다.
‘금관 쓴 채권자’라… 여하튼 일본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상품명이다. 마치 디트로이트에서 제조됐던 캐딜락(Cadillac)차 품명이 고풍스러운 프랑스를 떠올리고 뉴욕에서 생산되는 하겐다스(Haagen-Dazs) 아이스크림이 눈 덮인 알프스를 연상시키듯. 와이프가 그 고가 일제 시계를 단 한번 차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희귀성(Rarity)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야 하는데 다르다고만 해서 절대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하겠다.
# 궁중 광대(jester)와 원숭이
궁중 광대는 왕을 즐겁게 해주는 자리다. 그런데 왕을 웃게 한다고 해서 왕 주위에 있다고 해서 광대가 왕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간의 잘못으로 목이 날아가기도 한다. 광대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원숭이 역시 광대의 종이다. 원숭이는 그것을 모르고 뛰어논다.
공무원은 시민의 지팡이다. 그러나 간혹 그 사실을 망각하며 산다. 그와 마찬가지로 손님은 왕이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종종 그 사실을 잊고 때로는 손님이 정말 싫을 때도 있다. 사실 소매사업이란 것 별거 없다. 돈 되는 손님 잘 관리하고 말썽많은 손님 잘 처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광대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사업가는 무대에 서있는 연극인과 같다. 본인의 역할을 잘 소화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다.
# 물 떠난 물고기
성인이 되어 천직같이 매진하던 25년 공직생활을 하루아침에 접고 보니 나는 물 떠난 물고기 신세였다. 허탈감과 자책 그리고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초점 잃은 눈동자에 힘겹게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진열대 위 물고기와 같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군경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사회 적응이 힘들다 말한다.
세탁소 공장을 차려놓고 열심히 일을 배워나갔다. 그런데 한번은 스파팅 보드(Spotting Board)에서 뜨거운 스팀 건을 손님 옷에 들이대고 때를 빼고 있었는데 누구인가 내 등을 ‘툭’ 쳤다. 전처였다.
“Are you OK?” 순간 정신 차려 보니 손님 옷에 얼마나 뜨거운 스팀을 한군데에 뿌리고 있었는지 25전 동전만한 동그란 구멍이 나있었다. 혼자서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차’ 귀중한 손님 옷을 망치고 말았다. 고민 끝에 옷을 짜집기 수리한 후 손님에게 보여주고 배상했다.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명함들고 돌았던 수많은 사업체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전처는 밖에 나가 골프 치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상환해야 하는 융자금과 운영비가 산처럼 쌓여있는데 한가하게 골프만 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세탁소에서 손님 오기만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명함을 손에 쥐고 사업체들 문을 두드렸다. 호텔, 오피스, 아파트, 콘도, 어디든 사람 옷 입고 사는 곳이면 찾아가서 세탁 수거 배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호텔과 콘도 그리고 골프 코스에서 계약을 따내었다.
호텔은 매달 돈을 청구하는 형식이었고 콘도는 서비스를 원하는 손님들이 크레딧 카드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옷을 세탁하는 데로 자동 결제되는 방식을 택했다. 골프 코스는 행사 때 사용하는 식당 테이블과 종업원들 유니폼을 세탁해주었다. 유명 식당들도 찾아갔지만 가격 타산이 안 맞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주위분들이 여기저기 줄을 놓아 주셨다. 이렇게 공장 일은 대부분 전처에게 맡기고 외부에서 일거리를 따오는 일을 하다 보니 또 다른 큰 일이 벌어졌다.
# 산 넘어 산
정신없이 새 사업에 매진하던 한 여름날 전처가 할 이야기가 있다며 불렀다. 이혼하자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녀를 전적으로 이해했다. 부부는 일심동체다. 내게 죽도록 싫은 순간들이 존재했다면 그녀는 오죽 했겠는가.
너무나 그녀의 마음을 잘 아는 나였기에 시간을 부탁했다. 그녀가 6개월 시간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이란계인 그녀와 살아 죽는 날까지 같이 하기로 했던 맹세. 허탈했다. 연애 시절 그녀가 내 귀에 속삭여 주었던 수많은 이란의 시 구절들이 떠올랐다. 더 잘해보겠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힘도 상실했다.
알렉산드리아에 소재한 단칸방을 얻었다. 그리고 그 늦가을 저녁 소파도 없는 방 카펫에 앉아 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눈물만 계속 앞을 가렸다.
# 김유신 장군의 말
그해 추수 감사절 날 저녁, 홀로 아파트에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발길이 처자식이 살고 있던 옛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는 차들이 늘어서 있고 환히 보이는 주방 유리창 안으로 식기를 손에 든 식구들의 분주한 모습들이 보였다.
주저 하며 전화를 걸었다. 전처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잘라서 말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차 핸들을 돌렸다. 김유신의 말이라면 목이라도 치련만…. 왼 손가락에 있던 은색 반지가 떨어져 내렸다. 얼마 후 그녀가 내민 이혼장에 아무 말 없이 사인했다. 그녀가 무엇을 요구하던 다 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 돈키호테와 레판토 해전
내 나이 40대 초반 처자식 먹여 살리자고 뛰어든 사업, 그리고 한순간 찾아온 별거와 이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아니러니 하게도 역사를 뒤바꾼 레판토 해전의 산유물이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기사로서 출세해 보겠다고 해전에 참가했던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입은 오른팔 부상으로 무용지물의 기사가 되고 만다. 그 후유증과 쓰라림을 패러디한 소설이 돈키호테다. 그런데 왼손으로 쓴 그의 소설이 그가 꿈꾸었던 기사로서의 명성을 뛰어넘어 그 어느 영웅보다 유명한 문호로 탈바꿈 시켜주었다.
삶이 어떤 과제를 던져주던 피나는 투쟁으로 이겨 나가고 나를 변신시키며 맞추어 나가야한다. 역사를 쓰던지 시를 쓰던지 무엇이든 해야 한다. Credor 시계같이 개성미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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