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휴일 때 보스턴에 사는 큰애가 약혼녀와 함께 다녀갔다. 팬데믹으로 인해 1년 만인 셈이다. 원래는 지난 여름에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는데 1년을 연기했다. 그런데 연기된 그 결혼식을 아예 취소한다는 소식을 이번 주에 받았다. 백신 공급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거리두기 지침 때문에 결혼식 준비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냥 거주 지역 관청에 가서 결혼신고만 하겠다고 한다. 아버지인 나로서는 아쉽지만 현명한 결정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그런데 큰애가 다녀가면서 나와 팬데믹 대처에 대한 시각 차이로 크게 대립한 적이 있었다. 큰애 방문 기간 중 나는 작은 규모 외부 저녁 식사 약속이 두 개 잡혀 있었다. 그 얘기를 큰애에게 했더니 꼭 그 약속을 그대로 진행해야 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약속이라고 대답했다. 취소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큰애는 불만스러워 했다. 나는 나의 입장을 고수했다.
다음 날 새벽이었다. 내 방으로 큰애가 들어왔다. 잠을 못 잤단다. 나의 외부 약속이 우려된다고 했다. 자신이나 약혼녀 모두 팬데믹 기간 중 단 한 번도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다. 대신 음식이 필요하면 픽업해 집에 가지고 와서 먹었다고 했다. 나의 외부 약속은 위험하고 자신이나 약혼녀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자기들은 보스턴에서 내려 오기 얼마 전부터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격리’를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인 나도 자신들의 방문에 대비해 비슷한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방문기간 중에 외부 약속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항의를 듣는 순간 갑자기 화가 났다. 우선 나를 방문하는 게 어떤 호의를 베풀어 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자신의 방식을 나에게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약속을 취소할 수 없으니 그게 싫으면 돌아가든지 호텔로 가라고 했다. 큰 애는 잘 알았다고 하며 내 방을 나갔다.
그 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당연했다. 방역문제에 대한 아들과의 시각 차이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내가 보인 반응에 큰애의 마음이 상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날 저녁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두 사람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다. 큰애의 우려 표명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두 명 다 어렵지 않게 바로 약속 연기에 동의해 주었다. 그러던 중 다음 날 약속이 되었던 집에서 연락이 왔다. 그 집 가족 중 한 명이 몸이 약간 불편해 약속 날짜 변경이 가능하겠느냐는 문의였다. 그 반가운 문의에 대한 나의 호응에는 주저가 없었다.
그 후 바로 큰애에게 문자로 연락했다. 약속을 모두 연기했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큰애가 그 사이에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갔을까봐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직 집에 있었고, 큰애는 자신들의 방문이 나에게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와 약속을 연기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답장으로 보내왔다. 큰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큰애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대처에 대한 근본적 시각의 차이는 아마 각자 종사하는 일에 차이가 있음에 기인하는 것 같다. 큰애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면서 팬데믹 기간 동안 계속 재택근무를 해 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재택근무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고 한다. 물론 봉급 받는 걱정도 없다. 반면에 세탁소, 샌드위치 가게, 식당 등의 소규모 비즈니스 운영자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나는 팬데믹으로 인해 닫혀 있는 경제활동이 고객에게 주는 고통을 확실히 보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법과 보건지침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식당 이용 등의 활동에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고객들 모두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2021년 신축년 새해를 맞았다. 아직 힘들지만 소처럼 인내심을 갖고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바란다. 모두 몸과 마음 다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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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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