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임스 매디슨의 약력
△1751년 3월 16일 버지니아 포트 콘웨이 출생 △1771 뉴저지대학 졸업 1776년 버지니아 회의 대의원
△1778-79년 최고행정관 협의회 회원 △1780-83년 연합회의 대의원 △1784-1786년 버지니아 입법부 대의원
△1786년 애나폴리스 회의 대의원 △1787년 제헌회의 대의원 △1788년 버지니아 비준회의 대의원
△1789-97년 합중국 하원의원 △1799-1800년 버지니아 의회 의원 △1801-09년 합중국 국무장관
△1809-17년 대통령 △1836년 6월 25일 버지니아 몽펠리어에서 영면
가장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매디슨은 ‘헌법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마운트 버논과 애나폴리스에서 주간 (interstate) 회의를 조직하여 제헌회의로 이끌었다. 그는 버지니아안(案)의 많은 부분을 작성했고, 그것은 합중국 헌법 최종본의 토대로 활용되었으며 본회의의 성공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 그는 버지니아에서 헌법 비준을 끌어냈고, 헌법에 구현된 정부시스템의 가치를 명료하게 설명한 『연방주의론 논집』을 집필했다. 그리고 초대 합중국 의회에서 권리장전 수정조항을 발의하고 채택했다.
1780년대 매디슨은 각 회원국이 다른 나라와의 효율적 통상을 위해서는 통일된 상업정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마운트 버논과 애나폴리스에서 회원국들이 모여 헌법 제정까지는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회의를 갖는 데는 일조했다. 그 모임은 상업적인 현안들만을 논의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애나폴리스 회의에서 매디슨, 해밀턴, 그리고 다른 지도자들은 필라델피아에서의 회의를 소집할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 회의가 열리기 수 년 전부터 매디슨은 토마스 제퍼슨이 파리에서 보내주었던 정치철학과 헌법 관련 서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진정한 중앙정부를 건설하자는 제안이 담긴 버지니아안(案)의 초안을 작성할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회의장에서도 그가 정치이론에 가장 박식하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는 폭넓은 지식과 준비된 지성, 그리고 차분한 합리성으로 모든 대표단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회의 진행에 관한 가장 완벽한 비망록을 기록하는 것과 아울러 매디슨은 중요한 거의 모든 사안의 심사에 관여했다. 매디슨은 조지 메이슨과 함께 연방의회의 적어도 하나의 원(院) 만큼은 주 의회가 아닌 국민이 직접 선출해야 하며, 그래야만 모든 주의 시민들에게 중앙정부 안에서의 직접적 대표권을 부여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관계가 창출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매디슨은 중앙정부와 주 정부 간의 독특한 권력 분립을 고안하여 최종적으로 채택되는 데 기여했다. 개별 주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바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매디슨은 개인적 자유의 옹호론자인 조지 메이슨과 강력한 중앙정부의 옹호론자인 알렉산더 해밀턴 사이에서 조정자로서의 힘을 발휘했다. 버지니아안(案)(의 작성)부터 권리장전의 통과에 이르기까지 매디슨보다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은 없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매디슨은 지속적으로 공헌했다. 초대 의회에서 그는 행정부 수립을 위한 법안을 준비했다. 1798년 그는 “버지니아 결의안 Virginia Resolution”을 작성하여 외국인법과 보안법(Alien and Sedition Acts)의 위헌성을 적시했다. 국무장관으로서 그는 루이지애나 영토 매입에 관여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그는 영국과의 전쟁 기간 동안 국가를 이끌었고, 그로 인해 인기는 잃었지만 미국의 독립에 관한 의문을 최종적으로 잠재웠다.
●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
이종권 / 번역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