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2%라는 음료수가 나왔다. 밍밍하기도 하고 달근하기도 하고 살짝 찝찔하기도 한 이맛도 저 맛도 아닌 그저 그런 맛, 그렇다고 우유처럼 고급지게 하얗지도 못한 물 같은 음료였다. 물을 돈을 주고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을 때, 다른 음료에 비해 2%를 마시면 살이 찌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와 함께 고급진 심리를 이용한 음료수의 첫 시음이 아니었나 싶다. 한 끗 생각의 전환이 성공으로 이루어진 대단한 음료수의 출현이었다.
거의 동시에 스타벅스라는 거대한 미국 기업이 한국에 들어갔다. 스타벅스의 컵을 들고 횡단보도를 바삐 건너는 멋진 뉴요커의 광고를 내세워 마치 스벅의 로고 컵을 들고 있으면 나도 뉴요커가 되는 것처럼 착각이 되었다. 카페에 앉아 비싼 인테리어 감상비용을 당연시했던 그 당시에 테이크아웃이라는 이상야릇한 단어로 컵에 로고 하나 달랑 들어간 커피를 들고 다니는 소비자 덕에 돈도 안 들이고 광고효과를 본 한 끗이 다른 생각의 발상이었다.
한 끗 차이는 사람과 인간이라는 단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은 한국말이고 ‘인간'은 한자에서 온 말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 예를 들어 ‘이 사람아' 할 때의 사람은 한 사람으로서 개개인을 존중하며 하나의 개체로서의 의미로 와 닿는다. 하지만 ‘이 인간아' 할 때는 굳이 인간이 왜 이런 일을, 혹은 왜 이런 말을 동물도 아닌데 쓰냐는 의미로 약간은 비아냥거리는 속어로 쓰일 때 자주 등장한다.
북한 열병식을 본 적이 있다. 일렬종대로 서서 자로 잰듯한 걸음으로 수많은 사람이 마치 장병 인형처럼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절도 있고 극히 씩씩해 보이지만 한 사람이 수백 명을 조종하는 인형처럼 움직이려면, 모든 사람의 호흡이 일시적으로 정지되었다가 수백 명의 심장이 똑같이 뛰며 한 스텝 한 스텝 나가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과 인내가 그 안에 깃들여 있을까? 죽음을 다해 성공시켜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가졌기에 한 명만 삐끗하면 모두가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한 끗이다.
한 끗은 화투판, 특히 섰다판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스톱을 생각하면 쉬울 거 같다. 피박의 쓰라린 맛을 아는 사람들은 면피가 되는 그 한 장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피가 하나 모자라 더블로 점수를 내주느냐, 피하나를 먹어 면피를 하느냐는 바로 쓸모없었던 피 한 장이고 그 한 장이 고스톱의 운명을 바꾼다.
쥐고 있는 패와 깔려있는 패를 동시에 빠르게 읽어 나에게 유리한 패를 선택해서 한 개의 패를 빼는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걸 계산해내고 절묘한 타이밍에 상대방을 제압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 순간의 한 끗을 위해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의식적인 선택을 반복하며 돌고 돌며 살아간다.
손바닥 뒤집기처럼 단 한 끗의 차이로 싸구려 시장 제품이 되기도 하고 고급진 명품이 되기도 한다. 명품백의 진품과 가품을 진중하게 가름할 때도 바느질 한 땀의 차이로 명품과 짝퉁이 구별된다. 그림에서는 붓 터치의 미세한 한 끗 차이가 모나리자의 대작이 되기도 하고 진품과 똑같이 베끼는 복사품이 되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의 0.1초가 승부수의 최대 간극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한 끗 차이이고 이 간발의 차이를 내기 위해 수많은 땀을 흘리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현악기는 건반악기와 달리 줄 하나에 모든 음이 내재 되어 있다. 악보에 쓰인 음을 찾기 위해선 손가락으로 수만 번 눌러보아야만 정확한 음을 찾을 수 있다. 한 끗의 반의반만 다르게 눌러도 완전히 다른 음이 나오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만 그렇게 정확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 걸까? 줄의 한 끗이 음악의 대가를 만든다.
이러한 한 끗은 인간의 모든 갈림길을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똑같은 상황을 놓고도 일반 시민의 의식과 논평을 하는 작가와의 문제의식이 주는 차이는 양면의 손바닥처럼 극과 극의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 또한 한 끗 차이다. 양날의 칼처럼 상반된 문제의식으로 바라본 결과는 참혹하도록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고 한 끗 차이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 나의 한 끗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한 끗은 있고 언제, 어디에서나 한 끗은 연속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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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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