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아직 젊다. 한국전쟁 때 고향 북한에서 홀로 남하 후 가족 없이 있기 외로워 일찍 결혼했다. 그래서 나와 24살 차이 띠 동갑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87세이니 단순히 숫자로만 놓고 볼 때는 그래도 제법 연세가 든 편이다. 그런 아버지가 고집이 세다. 그리고 자존심도 강하다. 그런 면에 있어 내가 아버지를 꼭 닮은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고집 세고 자존심이 강한 두 남자가 논쟁을 벌일 때면 가관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는 억지, 나는 아버지를 모순에서 구하려는 효심이라고 자위한다.
팬데믹 전에는 나의 집에서 가히 멀지 않은 곳에 혼자 사는 아버지와 정기적으로 만나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소주 한 잔 걸치고 아들에게 과거에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아버지는 나와의 만남을 즐겼다. 여기저기 새로운 식당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아했다. 소주가 없는 미국 식당이라도 처음 가 보는 곳이라면 흥미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아버지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그러면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종종 당신의 말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로 인터넷 검색 결과를 댄다. 이에 나는 그럴리 없다고 응수한다. 다시 잘 확인해 보시라고 주문한다. 대화가 이쯤에 이르면 많은 경우 결론이 안 난다.
그런데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집에 모셔다 드리면 아버지는 다음 만남을 준비한다. 인터넷에 들어가 추가 검색을 하고 연구를 마쳐 다시 만날 때 그 전 식사 때 결론이 안 난 부분, 특히 내가 반론을 제시한 점들에 대해 반박 논리와 정보를 제시한다.
물론 아버지 만큼 추가 연구에 열심이지 않은 내가 허를 찔리는 것이다. 그럴 때 내가 사용하는 가장 큰 무기는 인터넷에 검색되어 나오는 정보가 모두 정확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의 주장은 논리 부족이라고 한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다고 맞대응 한다. 결국 또 다시 결론이 나지 않는 팽팽한 대치가 이어진다.
지난 주에는 아버지가 교통사고에 연루되었다. 주차장에서 큰 길로 좌회전 하며 나올 때 직진하던 차와 부딛혔다고 한다. 내가 사고 현장에 가 보니 그렇게 좌회전 하고 나오려면 길 가운데에 그어져 있는 노란줄 두 개의 중앙 분리선을 건너야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그런 곳에서는 좌회전이 안된다, 불편하더라도 우회전을 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미처 몰랐다고 했다. 사실 분명히 알고 계셔야 할 기본적 교통규칙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따지진 않았다.
아버지를 일단 픽업해 내 사무실에 모시고 와서 보험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아버지 차는 수리공장으로 견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보험 에이전트에게 차 열쇠를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견인할 때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시 연락이 와서 차에 갖다 놓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차가 주차 되어 있는 곳으로 돌아 가야 했다.
그런데 가던 중 그 차가 주차 되어 있는 곳에 가는 지름길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지름길로 가려면 좌회전을 해야 했다. 그래서 차를 멈추고 좌회전 신호를 준 후 직진하는 차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도로를 유심히 쳐다 보던 아버지가 낮은, 그러나 뭔가 하나 확실히 얻었다는 득의에 찬 목소리로, 여기에서 좌회전 하려면 노란줄 두 개를 그냥 넘어가야 하니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 오는 게 아닌가! 아하,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반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의 순발력은 결코 87세의 노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반격에 억지를 부리는 아들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 힘을 주어 “물론 안 되지요” 라고 말하면서 좌회전을 했다.
아버지가 이 칼럼을 읽게 되면 분명히 추가 반격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그 걸 안주 삼아 팬데믹 시작 후 갖지 못한 소주 모임을 갖고 한 번 부딪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가 아직 반격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그래야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직도 기가 팔팔한 내 아버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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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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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변은 효자시네요~그리고 행운아고요.. 건강한 몸 오래도록 유지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