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임무를 수행하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의미로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경구도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다툼이 그치지 않고 대통령 본인에 대한 지지율이 대폭 하락하자 나온 첫 언급이었다. 공인이라면 마땅히 조직의 업무를 우선하고 개인의 손익은 나중에 고려하라는 원칙을 훈시한 내용이었다.
세계를 정복하고 인류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징기스칸이 매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너무 목이 말라 겨우 발견한 샘물을 마시려는데 한사코 물 마시는 것을 방해하자 화가 치밀어 매를 죽여 버렸다.
그런데 샘물 안을 보니 썩은 구렁이가 있었다. 징기스칸은 사랑하는 매를 죽인 것을 크게 후회하고 그 이후 절대로 흥분상태에서 업무처리를 삼갔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국가업무에 개인의 감정을 대입시켜 처리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이성 대신 감정으로 업무를 처리하면 반드시 무질서와 혼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지금 추미애와 윤석열의 끝없는 격돌은 누가 보더라도 진흙밭의 개싸움(이전투구)이다. 애초 목표했던 ‘검찰개혁’은 종적을 감추고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생사를 건 본말전도 추태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희, 로, 애, 락의 근엄을 인간 품격의 도식으로 가르쳐 왔다.
기쁘다고 설치고, 슬프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배 좀 고프다고 궁티내지 말고, 뭣 좀 안다고 잘난 척 않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던 것이다. 즉 개, 돼지 짐승처럼 감정 노출을 자제하지 못하면 저질 인간으로 멸시하는 풍조가 상식화 돼 왔다.
하물며 전 국민의 눈 앞에서 국가 기본축인 법을 다루는 두 책임자가 일 년 내내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이 무슨 안하무인 망측 무도한 행패인가. 쟁투의 발단이 첫째 조국 전 법무장관 부부의 비리문제, 둘째 울산시장 부정선거 문제, 셋째 원전정책 공문서 불법폐기 수사 등이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이 문제들이 모두가 대통령에 관련 혐의를 두고 역린을 건드려 격돌의 발화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할 때만 해도 여당의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문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때는 여야 정치인들이 큰 기대를 걸기도 했었다.
그러나 김경수 경남 도지사가 부정선거 댓글 사건으로 구속 사태에까지 이르자 급기야 여권의 미운 오리 새끼로 둔갑해 버렸다.
그리고 추미애가 취임하자마자 관례를 깨고 상의 한번 없이 윤 총장의 측근들을 지방이나 연구원 기타 한직으로 좌천시켜 버렸다. 마침내 숙청이나 다름없는 총장 ‘직무배제’라는 강펀치를 날렸다.
그러자 검찰은 물론 추의 직계, 법무부 간부들 거의 전원 반대 성명이나 저항이 일어났다. 법무부 차관을 비롯한 검사장 간부들의 사퇴가 줄을 잇고 법학계, 변호사 단체들에서도 일제히 총장 직무 배제 부당성을 지탄하고 나섰다.
법조계 전체의 98.8%가 반대한다는 통계가 발표됐으며 법원(사법부)에서도 직무 배제는 불법이라고 판단하여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검찰 개혁 추진의 타당성은 충분히 있다. 오랜 독재 정치 시절 악질 검사들이 만들어 낸 관제 빨갱이 양산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중앙정보부 심지어 국군 보안사 등 각 수사기관들에 파견되어 무소불위의 악행을 저질렀던 부분들을 열람해 보면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 강력 추진에 십분 수긍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합리적 타협 수단을 외면하고 치졸한 싸움으로 국민을 피로하게 만드는지 납득할 길이 없다.
권력독점이라는 먹이를 앞에 두고 묘두현령(猫頭懸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패륜 잔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추, 윤 두 사람의 쟁투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와 경제 하락으로 지쳐 있는 국민의 분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 두 사람의 행패를 막아야 할 대통령은 도대체 무얼 하는 거냐는 원망의 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언제나 감정을 앞세우면 흥분하고 이성을 잃는다. 이성을 잃으면 실성이고 혼란이다.
해외에서 보는 국내 민심은 일촉즉발, 박근혜 탄핵 때의 촛불 혁명 사태 직전 양상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선공후사’도 좋은 말이지만 선문답만 하지 말고 두 사람의 난투 정리에 시급히 팔 걷고 나서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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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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