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에서 트럼프 이후의 미국을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앞으로 여러 해에 걸쳐 미국의 정치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숱한 도전과 위협에 직면했던 미국 정치제도의 개혁에 관한 논의는 지금 당장 시작해도 결코 이르다 할 수 없다.
이제까지 미국이 보여준 유연성으로 미뤄볼 때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 한마디만 하자. “창밖을 내다보라. 지금도 미국의 대통령은 그의 직위와 힘을 이용해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든다.” 다행히 트럼프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법원은 법의 잣대를 구부리기를 거부했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판사들조차 그들이 선택한 정당 대신 법을 따랐으며, 지방의 일선 관리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해냈다.
이 모두는 대단히 고무적이다. 그렇긴 해도 지난 2개월 사이,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근본적인 약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미국의 선거는 비정치적인 연방정부 관리들이 아니라 지방 정치인들이 관장한다. 양당의 선출직 혹은 임명직 대표들이 선거를 모니터하고 그 결과를 집단적으로 인증하는 식이다. 이 같은 선거인단 제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당 대표들 모두 최종 승자가 누가됐건 공정한 선거결과를 인증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예외였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전국당위원장, 다수당 상원 지도부 및 현지 당 지부장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의 구성원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지방의 선거담당 관리들에게 정해진 인증절차를 연기하거나 거부하라며 압력을 가했다. 예를 들어 결선투표를 앞둔 조지아 주의 공화당소속 연방 상원의원 두 명은 같은 당에 속한 브래드 라펜스퍼거 주 총무처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조지아 주의 선거가 공정했다고 공식확인한 그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미시건의 공화당지부 간부들은 4인으로 구성된 주선거조사위원회 멤버인 두 명의 공화당원에게 선거결과 인증을 거부하라며 압력을 가했고, 결굴 둘 중 한 명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인 아론 반 란저베이드(40)가 꿋꿋이 버틴 덕에 미시간의 개표결과는 공식적인 인증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미시건에서 15만 표차로 트럼프를 꺾었다.)
그러나 얘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트럼프는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주요 경합주의 공화당 관리들에게 계속 무자비한 공격을 가할 것이다. 만약 대통령의 표적이 된 라펜스퍼거나 란저베이드가 정치판에서 그대로 퇴출된다면 향후 선거에서 이번처럼 박빙의 결과가 나왔을 때 해당주의 최종 개표결과 인증을 담당하는 공화당 관리들은 당을 국가보다 우위에 놓거나 아니면 자신의 커리어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다음번 선거에서 인증을 담당할 공화당소속 지방 관리들은 라펜스퍼거나 란저베이드만큼 청렴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파색이 강한 공화당계 젊은 판사 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선거제도는 일반 시민과 민간단체들이 정기적으로 공식적인 선거업무를 관장하는 앵글로-색슨 시스템에 뿌리를 박고 있다. 앵글로-색슨 방식은 각 주 정부에 더 많은 통제권을 부여하는 프랑스의 대륙법 시스템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앵글로-아메리칸 시스템은 일반 시민들이 공익을 사익보다 앞세울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주축을 이룬다. 트럼프는 바로 이같은 가정을 흔들어 놓으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일련의 포스트-트럼프 개혁을 필요로 한다. 먼저 당파적인 관리들이 아니라 비정파적인 무소속 민간인들로 구성된 기구가 선거를 관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유권자등록, 우편투표, 재검표와 선거결과 발표에 관한 표준화된 규정이 확립되어야 한다.
또한 트럼프 시대의 경험을 근거로 불문율로 여겨지던 전통과 관행을 법제화하는 보다 광범위한 일련의 개혁조치가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이해상충의 잠재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세금보고 서류도 일반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선거의 승자들은 임기 중 그들이 소유한 비즈니스나 자산을 제 3자에게 맡겨 관리토록하고 절대 간섭을 하지 않는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를 의무화해야 한다.
선거제도와 관련해 손을 보아야할 또 한 가지는 선거에서부터 당선인의 취임에 이르는 기간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너무 길고,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이 후임자의 취임 이전까지 지나치게 과도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당선인에게 정권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풀지 않거나 바이든에게 정보 브리핑을 거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런 종류의 위험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원활한 정권이양과 퇴임하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재산증식 및 후임자 발목잡기 등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법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함으로써 트럼프는 이 제도가 지니는 약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4년후 트럼프 본인이, 혹은 그와 유사한 성향의 정치인이 다시 등장할 때에 대비해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들의 훼손 시도를 버텨내기에 충분한 제도적 장비를 갖추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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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자카리아의 견해에 100% 공감한다.
미국리 수정되어야할법이 한두개인가? 총기소지부터 시작해서 선거법까지 미개한 법이 지배하는 미국이다.
너무나 많은 흑탕물을 뒤집어쓴 미정치 경제 일반 시민들 앞으로 이많은 냄새지독한 흑탕물을 걸러낼수있을까가 미국을 지구촌의 리더로 갈수있는 나라가 될수있는가 점점더 위상을잃어가는 미국이 되어가지않을까 몹시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