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함으로써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외출 시 마스크 착용에서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재택근무, 실내에서의 인원 제한, 악수대신 주먹치기 등은 어느새 ‘뉴노멀’로 자리 잡았고, 대인관계도 각종 화상채팅 앱들을 통한 비대면 방식이 더 자연스럽고 익숙해졌다. 이런 언택트 시대 분위기에 따라 각국의 법정도 안팎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다.
먼저 이번 감염병의 발원지였던 중국은 화상재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코로나 이전인 2017년부터 중국판 실리콘밸리인 항저우에 샤핑몰 계약, 품질 보증, 지적재산권 분쟁과 같은 인터넷 상거래 전문 온라인 법원을 발족했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수도인 베이징과 광저우에도 인터넷법원이 생길 정도로 화상재판 분야에서 세계적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특히 올 2월 상하이 제1중급 인민법원에서의 약물범죄 사건 재판은 판사가 마스크를 쓴 채 재판정에 설치된 대형 TV로 화면을 4분할하여 검찰과 피고인 등을 화상으로 연결,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이 소개되어 비상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은 IT강국임에도 불구, 근거법령이 마련되지 않아 민사재판 변론준비 절차에서만 일부 화상재판을 이용할 뿐 본격적 단계로는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작년 말 일본에서 열린 한일 민사사법 심포지엄에서 강현중 변호사(전 사법정책연구원장)는 “재판에 있어 물리적 공간인 법정에의 출석은 규범상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원칙은 아니기 때문에 영상재판에서의 연결 자체를 재판절차 상의 출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주장하며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 ‘법률신문’은 11.5. 사설을 통해 최근 주기적으로 국제적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코로나로 여러 차례 전국적인 재판 중단 사태까지 생겼음을 엄중히 지적하고,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보장 차원에서 이런 특수상황에 대비한 영상재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 지원법안(The Coronavirus Aid, Relief & Economic Security Act)’을 통해 연방법원에서 영상재판을 허용토록 근거규정을 마련한 데 이어 주 법원들 역시 소장 및 소송관련 서류 접수, 증인 진술이나 변호사의 변론 등 재판 본질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정을 원격으로 할 수 있도록 법원의 언택트 서비스의 범위를 넓혀갔다.
그럼에도 전 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미국의 특성상 재판만큼은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집착이 강한 편이라 단기간에 변신이 쉽지만은 않다. 이는 사건 당사자와 배심원들이 증인의 얼굴을 직접 마주 보고 증인의 발언 내용뿐만 아니라 표정과 태도, 목소리의 강약 등을 입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미국 헌법에 의하면 공개적으로 배심원 재판을 보장해 주게끔 돼있는데 한꺼번에 6~12명의 배심원이 화상으로 재판에 참여하기 힘든 현실적인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뉴욕시는 10월 말부터 판사석을 비롯 증인, 변호사, 배심원석에 아크릴판으로 각각 가림막을 설치하고 모든 사람들이 페이스쉴드를 낀 채 대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평소 서로 옆자리에 붙어 앉던 변호사와 의뢰인마저도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긴 변호사 테이블의 양 끝에 떨어져 블루투스 헤드셋을 통해 대화하는 모습은 코로나-19로 변모된 일상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이채롭다. 배심원들 역시 3자리씩 떨어져 앉고 배심원석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청중석에서 배심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재판정 내의 어려움과 함께 법원 건물의 인원 제한으로 한 번에 1~2건 정도의 재판밖에 진행할 수 없다는 것도 법원의 현실적 고민이다. 작년의 같은 기간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하루에 15건 정도의 재판이 진행되던 것에 비교하면 재판이 얼마나 늦게 진행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여파로 코로나-19 전에 비해 재판대기 중인 형사사건이 1/3가량이나 늘어 헌법에서 요구하는 또 다른 핵심 가치인 ‘신속’한 재판에 법원이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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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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