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28년 전인 1992년 11월18일 사진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두 사람이 미소 띤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다. 이들은 그 해 대통령 선거 보름 후,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처음 만났다. 정권 이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였다.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겠으나 사진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 그런 분위기다.
실제로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의 장남인 ‘아들 부시’ 대통령은 46년생 동갑들이다. 아들 부시가 클린턴 보다 생일이 한 달 정도 빠르다. 퇴임 후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 내외의 친밀한 관계는 이어졌다.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이 맞붙은 92년 선거도 치열했다. 부시는 걸프전 승리로 한 때 9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던 현직이었다. 그런 그가 덜미를 잡혔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클린턴은 약관 46세. 경륜과 관록이 무르익은 64세의 현직이 패기만만한 정치 애송이에게 무너진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프레미엄은 크다. 지난 1860년 이후 현직이 연임 시도에 실패한 경우는 24번중 7번. 아버지 부시가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패배로 68년부터 이어져 온 공화당 정권도 막을 내려야 했다. 그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불명예였을 것이다. 하지만 개표 결과가 알려지자 바로 당선인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인수 인계를 시작했다. 미국 정치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게 했다.
현직으로는 28년만에 연임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내년 1월20일로 예정된 차기 정부 출범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과 역사가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 파란곡절을 겪은 선거가 한 두번이 아니었으나 체제의 근간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지난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이 맞붙은 대선도 후폭풍이 거셌다. 그 때도 ‘투표 사기’ 문제가 제기됐다. 닉슨 지지자들은 여러 주에서 재검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때여서 우려가 컸다. 지난 1800년 제3대 대통령 선거도 순조롭지 않았다. 당시 토마스 제퍼슨과 상대 후보는 공교롭게도 같은 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당선자는 연방 하원에서 가려야 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정통한 정치학자들은 진즉 올해 선거의 후유증을 예견해 왔다. 하지만 ‘재앙적 결과’를 예상하지는 않았다. 이런 역사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일부 예상 시나리오는 다소 앞서 나간 느낌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일반 미국인의 상식과 양식을 믿어야 한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중심추 역할을 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의식과 문화 수준이다. 이를 거스를 수 있는 정치는 없다. 헌법은 선거 혼란을 해결하는 절차를 규정해 놓고 있다. 그에 따르면 될 일이다.
“..... 그(트럼프)는 재검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법정으로도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재검표나 법원에서도 결과가 바뀌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모든 법적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단어의 사용은 조심해야 한다.....”. 공화당의 미트 롬니 상원의원은 얼마 전 한 TV 인터뷰에서 이런 의견을 밝혔다.
공통된 지적은 정권이 바뀐다 해도 트럼프주의가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4년’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미국민, 미국사회의 선택이었다. 트럼피즘이 역사의 실수나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어떤 필연의 산물로 받아 들여야 한다. 트럼프는 여전히 공화당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분명한 것은 지난 4년 동안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이끌었던 이슈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타래는 오히려 더 꼬였다.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요란한 충돌음을 냈던 트럼피즘 갈등이 극대화 된 가운데 트럼프는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승리의 환호와 감격의 순간은 잠시, 민주당으로서는 무거운 짐을 유산으로 물려 받았다. 가장 먼저 바이든 당선자가 한 말은 통합과 치유였다. 다른 말을 앞세우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그게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현란한 정치적 수사만으로 통합과 치유가 이뤄질 수 있다면 대통령 하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선거가 끝나는 순간 바로 다음 선거는 시작된다. 대통령직이 품격을 회복하게 되리라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바이든 정권은 전임 정권보다 지혜롭기를 기대한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그래야 할 것 같다. 이번 선거로 백악관의 주인은 바뀌더라도 의회 의석이 말해주듯 민주당의 완전한 승리는 아니라는 지적을 흘려 듣지 않았으면 한다.
<
안상호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가정이 회사가 나라가 망하는징조는 아주작은데서부터일수도 잇지만 국민 한사람한사람이 이를 인식하고 노력한다면 이겨 나갈수가 있겠지만 그렇지못하고 어제에 꼿혀있는생각이라면 점점ㄷ 어렵고 결국엔 너도나도 피해를보는 결과를어려움을격는 결과를 다음세대에 부끄러운 결과를 안겨 줄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