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샤토 갤러리 2인전 ‘존재: 두 가지 은유’를 찾았다가 들은 대화 속 한마디가 “그림이 말을 걸어요”다. 바다와 연결된 샌 피드로의 스튜디오에서 박다애 작가가 그린 작품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한 관람객이 그 동안 잊고 있던 내면의 소리를 저 그림이 말해주고 있다며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얼마든지 머물러 있어도 된다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코로나19가 바꾼 전시회 관람방식은 시간 제약이 따른다. 방문 날짜와 시간까지 사전 예약은 필수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마스크를 쓴 채 20~30분 정도의 한정된 시간 내 관람을 마쳐야 한다. 작품 앞에 서서 많은 관람객들이 작가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소통과 감동을 나누는 시간은 당분간 기억 속에 간직할 수 밖에 없다.
지난 3월 중순부터 강제 휴관에 들어갔던 한인 갤러리들이 일제히 빗장을 풀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집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온라인 뷰잉룸으로 비대면 관람을 해오다가 연거푸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유머러스한 사진들로 인해 현장 나들이를 감행했다. 리앤리 갤러리가 전시 중인 김경민·권치규 초대전 ‘그와 그녀의 것, 인생 이야기’이다. 10년 전인가 부부 조각가의 예술적 동상이몽 공간이라는 소개에 흥미가 느껴져 인터넷을 뒤져보았던 권치규 교수와 김경민 작가의 전시. 자기네 가족 5명의 일상을 소재로 조각상을 만드는 김경민의 작품은 익살스런 표정마다 드러나는 소소한 행복과 다이내믹하면서 유머러스한 동작이 웃음을 선물한다. 남편 권치규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재료로 간결하면서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조형물을 만드는데 LED 조명을 작품 속에 설치하면 회색 도시에 지친 현대인에게 숲 속 쉼터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지는 이 전시는 아녜스 이 관장의 속을 무지하게 태우고 어렵게 일반에게 공개됐다. 지난 4월로 기획된 초대전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 직전 한국에서 선적된 작품들이 봉쇄령 이후 미국에 도착했다. 몇 달 동안 창고 신세를 져야했고 두 작가가 미국을 방문해 전시 준비를 마치고 개막을 기다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지 수 개월이 지난 10월 중순에야 관람객들을 맞이하게 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전시가 취소 혹은 연기되면서 어려움에 직면한 갤러리가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일정이 취소된 공연계에 비하면 낫다고 해야하나. 영국 최고의 공연예술장인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지난달 재정 압박에 못이겨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그림값을 받는 영국 화가 데이빗 호크니의 작품을 경매로 매각했다고 한다. 경매에 나온 호크니의 작품은 1971년작 ‘데이빗 웹스터 경의 초상’이다. 1945년부터 1970년까지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관장을 지낸 웹스터 경의 측면 초상을 그린 이 작품은 런던 크리스티에서 1,286만여 달러에 낙찰됐다. 2차 대전 당시 콘서트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거부하며 “음악이야말로 사기를 높이는 필수요소”라고 노동자와 군인들을 위한 저가 콘서트를 열었던 웹스터 경이 사후에는 자신의 초상화를 팔아 공연장을 지키는 셈이 됐다. 웹스터 경은 관장 퇴임을 앞두고 호크니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했다가 처음에는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페라를 사랑하는 호크니가 마음을 바꾸면서 이 초상화가 탄생했고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오페라하우스를 지키는 구명줄이 되었다.
예술은 후원자, 조력자가 필요한 분야다. 지금 같은 힘든 시기에는 예술가들이 작업에만 매진하도록 옆에서 힘을 보태는 후원자들, 작품을 알아봐주고 전시해주는 조력자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라하브라에 한인화랑 ‘갤러리 바우하우스’가 개관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어려운 환경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발표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 갤러리 개관을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다가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시기 오히려 작가들에게 더욱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는 김인택 이사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예술가를 묵묵히 지원하며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면 예술가와 후원자, 그리고 관람객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긴다. 더 이상 미술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에 대해 어려워하지 말자.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도상학적 3단계대로 ‘보고 읽어내고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작가가 의미를 담은 그림이 말부터 걸어온다면 언택트 시대를 살아갈 충분한 힘을 얻을 것이다.
<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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