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스 가문은 미국의 첫 번째 정치 명문이다. 하버드를 나오고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존 애덤스는 미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로 워싱턴에 이어 두 번째 대통령이 됐다. 그의 세 아들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버드를 나온 후 변호사가 됐고 맏아들 존 퀸시는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부자 모두 대통령이 된 것은 미 역사상 애덤스와 부시 집안이 유일하다.
그런 애덤스 집안은 행복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행히 큰 아들은 성공했지만 둘째와 셋째는 엄격한 아버지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둘 다 알콜 중독자가 됐다. 둘째 찰스는 방탕한 생활 끝에 빚까지 지고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직중인 1800년 서른살에 간경화로 요절했다. 아버지와는 의절해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셋째 토머스도 평생 알콜 중독과 빚에 시달리다 죽었다.
역시 정치 명문으로 꼽히는 부시 집안도 비슷하다. 아들 조지 W 부시는 늘 아버지 부시와 비교당하며 열등감에 시달렸다. 집안 후광으로 나쁜 성적에도 예일과 하버드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졸업 후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는가 하면 석유 사업에 투자했다 실패하기도 했다. 부인이 된 로라를 만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새롭게 태어나 텍사스 주지사에 이어 대통령이 되기는 했으나 이라크 전 실패와 금융 위기 등으로 그는 미 역사상 최악 대통령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의 쌍둥이 두 딸마저 대학 시절 미성년 음주로 경찰 조사와 학교측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2000년 선거에서 부시에게 아깝게 진 앨 고어 집안도 정치 명문이지만 그의 아들 역시 마약과 알콜 중독자다. 앨 고어 3세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캘리포니아에서 세차례나 음주 운전과 마리화나 및 처방 받지 않은 약물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12주간의 약물 재활 교육과 커뮤니티 서비스 봉사 명령을 받고도 그의 마약 복용은 계속됐다.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남겨둔 지금 당선이 유력시 되는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의 마약 중독 사실이 뉴스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지지율이 하락하며 재선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트럼프는 바이든의 약점인 헌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가 우크라이나와 중국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이들 나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일부 극우 매체와 SNS를 통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지만 주류 언론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가 연방 하원에 의해 탄핵된 이유가 바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해 헌터의 비리 사실을 밝혀내지 않으면 의회가 배정한 군사 지원금을 주지않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법당국은 2019년 헌터가 법을 어기고 비리를 저지른 증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헌터가 수십년간 마약과 알콜 중독에 시달려 온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가 “나는 어둠 속에 있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터널이다. 그것을 끊을 수가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그 와중에 결혼과 이혼, 동거와 재혼을 반복하며 세 여자에게서 5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는 조지타운대와 예일 로스쿨을 졸업하고 투자가와 로비스트로 활동했지만 아버지인 조나 그의 형 보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조 바이든의 맏아들인 보는 펜실베니아대와 시라큐즈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라크 전에 참전한 전쟁 영웅으로 델라웨어 주 검찰총장을 두 차례 역임했으며 2014년 2016년 델라웨어 주지사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그가 출마했더라면 주지사는 물론이고 워싱턴 정계 진출도 유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2015년 뇌암으로 46세를 일기로 사망하고 만다.
정치인의 자식들이 왜 자주 약물에 빠지는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유명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주목을 받으며 아버지와 비교되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훌륭한 인물이면 훌륭할수록 자식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절망 속에 약물로 쌓인 좌절과 울분을 달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한국에서도 한 대통령의 아들이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감방을 수없이 드나든 적이 있다. 최근 헌터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유명 정치인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도 큰 복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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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