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전 세계의 안방에서도 한국의 모든 방송 채널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테스 형”은 지난 9월 30일 KBS 2TV 한가위 대 특집으로 방영된 <나훈아 2020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에서 불렀던 신곡의 제목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관중이 없는 비대면 영상 라이브 쇼로 전 세계에 전송된 이 콘서트는 나훈아라는 가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를 열렬한 팬이 되도록 만들었다. 7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폭발적 가창력, 세련된 무대매너, 어눌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말솜씨와 쇼맨십, 청중들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는 쥐락펴락하는 무대 장악력은 15년 동안이나 무대에 서지 않았던 그였지만 지난날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고, 더욱 성숙한 모습이었다.
1)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2) 울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져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 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 형, 세월은 왜 저래/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 형/ 아! 테스 형....
이 노래는 단숨에 한국 음원 순위 최상위권에 진입하였고, 젊은이들까지 열광하게 했다니 역시 위대한 가수임이 틀림없다. 소크라테스 형이 밑도 끝도 없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저세상으로 가버렸듯이, 나훈아는 이 노래 한 곡 불러놓고 세상을 향해 뼈있는 한마디를 화두로 던졌다. [어느 시대 어느 왕이나 대통령도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세상을 향해 이말 한마디 하고 싶어 5억이나 되는 개런티도 사양하고 19번이나 무대의상을 갈아입으며, 2시간 30분 동안 29곡을 지친 기색도 없이 불렀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꺾어 넘기는 내공이 전 세계 어떤 유명 가수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나훈아는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가수요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이번 공연은 KBS 2TV 제작2본부 이훈희 본부장의 작품이라고 한다. 공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반응은 두 갈래였다. 시청자들은 모두가 시원한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대통령과 정치권에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KBS는 사장의 임명과 해임권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공영방송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공연이 이훈희 본부장과 양승동 사장의 암묵적 묵인 아래 행하여졌을 것이란 점이다. 여기에 간섭받기 싫어하는 나훈아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예술혼이 더해져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주제별로 보면 1부 <고향>, 2부<사랑>, 3부<인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곡 “고향으로 가는 배”에서는 무대에 배가 등장하였고, 풍랑에 휩싸인 바다 위에 나훈아가 등장하고, “아담과 이브”에서는 와이어를 타고 공중을 날았으며, '영영'을 부를 때는 무수한 별빛을 배경으로 무한한 우주 공간을 연출했으며, 마지막에는 코로나19를 이기자는 의미로 바이러스를 형상화한 그래픽이 불길에 펑펑 터지고 있었다. 물속에 뛰어든 나훈아의 모습과 장엄하게 펼쳐진 태극기가 드넓은 바다 위로 떠 오르는 수중 촬영을 끝으로 화려한 공연의 막이 내렸다.
언제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나훈아는 무대 뒤로 사라져 갔지만, 그가 남긴 한마디 [어느 시대 어느 왕이나 대통령도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나라를 구한 것은 언제나 국민들이었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라고 직격탄을 날려버린 이 한마디는 광화문 광장에 10만 명쯤 모여 머리띠를 두르고 핏대를 올리며 외치는 목소리보다 더 크게 “테스 형”이란 노래에 실려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해서 나의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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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최 (샌리앤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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